돼지등, 도서관 이름이다. 논두렁에 서서 고층 아파트가 보이는 도시 변방에서 민간 사립도서관'돼지등' 을 운영한다. 지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름 '돼지등'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은 '돼지똥'이나 '돼지등뼈'와 비슷한 거냐고 되묻곤 한다. 돼지등이란'높은 곳에 무엇인가 올리고 내릴 때, 밟고 올라가도록 허리를 굽힌 등'을 의미한다. 즉 누군가가 내 등을 딛고 일어서 희망을 볼 수 있다면, 기꺼이 허리를 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이름이다.
하얀 목련이 만발한 날, 돼지등 도서관은 지역민을 대상으로'제2회 동네방네 백일장'을 열었다. 글제는'우표와 연필' 이었다. 이 둘의 공통점은'소통'이다. 연필로 써서 우표로 그곳까지 보내는 일은 일종의 소통이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가 우표와 연필인 셈이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흰 여백을 촘촘히 채워가고, 마음의 자리엔 기억 하나가 피어난다.
한 여자의 생애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어머니의 등은 마치'돼지등' 을 닮았다.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은 어머니 등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셨다. 어머니의 등에는 나 말고도 수많은 짐들이 얹혀 있었다.
굴곡진 삶보다 더 굽은 어머니의 등은 등에 업힌 아이의 심장과 소통하던 곳이었다. 등에 업혀서 젓갈의 냄새처럼 곰삭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의 흐느끼는 눈물을 등에서 느꼈고, 약하고 고단한 등 위에서 울음을 멈추었고, 고독이 배어있는 시린 등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 등은 아이에게는 늘 구름처럼 포근했다.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힘겹게 계단을 오른다. 난생 처음 말이다. "어머니, 제가 업어드릴까요?""나를 업어? 나 아직 끄떡없다."젓갈시장에서 아들을 업은 것은 괜찮고, 중년의 아들이 당신을 업는 것에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인생의 짐에 못 이겨 허리는 구부정해지고 어깨마저 작아진 어머니의 등, 그 위에 얹혀 있는 한 여인의 생이 세월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이 깊고 성스러운 어머니의 등을 자식 된 주제에 어찌 다 이해할까마는, 이제 너도 조건 없이 그냥 넉넉히 받아주듯, 숨통조이는 팍팍한 세상에서 오지랖 넓은 돼지등이 되라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서려고 아귀다툼하며 서로 상처만 주고받는, 그래서 꿰맨 흔적투성이인 우리네 세상에서 백만분의 일이라도 어머니의 등을 닮은 돼지등이고 싶다.
기도한다. 어머니를 업고 싶은 내 마음의 소원이 어머니의 끄떡없는 다리와 단단한 자존심 때문에 오래도록 이루어지지 않기를.
이상렬 수필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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