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명성도 보수되어야 유지된다

요즈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칠게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그런 비난들의 핵심은 으레 '독재자'라는 말이다. 새로울 것 없는 그런 비난이 다시 거세진 것은 물론 박근혜 의원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기 때문이어서, 앞으로 더욱 거세질 터이다.

그런 비난에 맞서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박 의원도 새누리당도 대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들에게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제대로 알리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대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라는 태도다.

그런 태도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박 전 대통령에 관한 얘기가 덜 나올수록, 박 의원이 누리는 우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관한 논의는, 좋은 평가라도, 박 의원을 '대통령의 딸'로 보도록 해서, 스스로 이룬 업적을 시민들이 보기 어렵게 만든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의 명성은 좌파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끊임없는 비난에 침식된다. 오래 지나면, 특히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사회를 이끌게 되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독재자로 고착될 것이다. 모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명성은 부지런히 보수되어야 유지된다.

이런 상황은 박 전 대통령의 명성이라는 수준을 훌쩍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박 전 대통령은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진화한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지도자이며,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 사회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박 전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잘 구현한 지도자다. 그의 위대함은 시대정신을 잘 인식하고 그 거대한 힘과 자신의 목표를 조화시킨 데서 나왔다.

그의 집권 과정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강대국들이 모두 참가한 국제전이었던 6'25전쟁을 치르면서, 한국군은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조직으로 발전했다. 비합리적이고 비능률적인 군대는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반면에, 당시 우리 사회는 중세 사회의 모습을 많이 지녔었다.

자연히, 국군을 구성한 인적 자원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압력이 높은 국군이 압력이 낮은 사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아쉽게도, 그런 인적 자원의 재배치는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고 마침내 5'16 군부정변이라는 불행한 형태로 압력의 불균형이 해소되었다. 박정희 소장은 그런 시대적 흐름을 타고 집권에 성공했다. 만일 그런 흐름이 없었다면, 이력에 큰 흠이 있고 주요 직책을 맡지도 못한 그가 정변에 성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시대정신을 잘 구현했다는 사실은 그의 자유주의 경제 정책에서 웅장하게 드러난다. 그는 처음부터 외부지향적 경제 정책을 추구했다. 그것이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드물었다. 바로 거기에 박 전 대통령의 위대함이 있다.

20세기 중엽 뒤진 나라들의 경제성장에 관해서 큰 영향력을 지녔던 이론은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프레비쉬(Raul Prebisch)의 주장이었다. 그는 뒤진 나라들은 불리한 조건으로 원자재를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도록 강요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역 대신 수입대체 산업을 육성하라고 추천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을 지향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정책을 통해서, 우리는 성공적 경제성장과 사회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가 추구한 자유무역은 협력과 분업이라는 삶의 원리에서 나온 것으로 영원한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 박 전 대통령의 이념과 정책은 생생히 살아있다. 당연히, 그에 대한 거친 비난으로 그의 명성이 침식되는 상황은 보기보다 큰 문제다.

문제가 될 만한 논점들을 피해서 우세함을 지키려는 태도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런 요새 심리(fortress mentality)는 보기보다 위험하다. 요새는 본질적으로 기동력을 버리는 선택이다. 요새들을 연결해서 장성으로 만들어도, 기동력이 좋은 적을 막지 못함을 역사는 거듭 보여준다. 아무리 견고해도 적군이 싸움을 걸어오지 않으면, 요새는 쓸모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의 명성을 지키는 일은 삶의 터전인 평원을 다투는 일이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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