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북으로 끌려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정부로부터 민간인 납북피해자로 인정받은 유원순(당시 40세) 씨의 아들 유재민(73'대구 서구 중리동) 씨는 아버지를 회상하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유 씨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납북됐다.
아버지가 납북된 뒤 유 씨 가족은 평생 한을 품고 살았다. 유 씨는 "군대시절 갑자기 상관이 불러 갔더니 아버지 호적이 왜 북한으로 돼 있으며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냐고 추궁당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지난해 6월 라디오에서 "6'25 전쟁 납북피해자 신고'접수를 받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바로 호적 등본과 진술서 등 해당서류를 준비해서 구청을 찾았다. 유 씨는 구청 직원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정부 기록을 찾던 중 1956년 아버지의 사촌 동생이 아버지를 납북자로 신고한 기록을 찾아냈고, 그 기록을 근거로 아버지가 납북됐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유 씨는 "아직도 정부가 납북피해자 신고'접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홍보를 더 강화해 명예회복이 되지 않은 많은 납북피해자 가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납북피해자들이 연좌제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대구에서는 최근 7명이 추가로 납북피해자로 인정받았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각 구'군청을 통해 납북피해자 신고를 접수한 결과 대구에서는 20명이 신청해 7명이 납북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이정환(47'대구 달서구 호산동) 씨의 할아버지 이강우(당시 60세) 씨도 최근 민간인 납북피해자로 인정받았다. 당시 제헌의원이었던 이 씨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북한군에게 끌려갔다. 이내 이 씨의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 이 씨의 작은 고모는 할아버지가 납북됐다는 사실 때문에 혼삿길이 막혔으며, 아버지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인쇄소나 공장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 씨는 "어릴 때 부모님과 고모들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말조심을 시켰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해 5월 납북제헌의원 유족회를 통해 정부에서 납북피해자 신고'접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정부문서기록보존소와 신문기사 등 관련자료를 제출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납북피해자 가족들은 정부가 납북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생사 확인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 씨는 "역대 정부들은 6'25 전쟁 당시 납북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커녕 피해자로서 인정도 해 주지 않았다"며 "정부는 납북피해자 가족들이 당했던 고초와 마음 고생을 보상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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