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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관중 난동으로 잃어버린 KS티켓

38) 호세 방망이 투척 사건…1999년 플레이오프 악몽

1999년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 때 롯데 호세의 방망이 투척 사건 후 흥분한 관중이 1루 쪽 롯데 선수들을 향해 각종 오물을 던지고 있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1999년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 때 롯데 호세의 방망이 투척 사건 후 흥분한 관중이 1루 쪽 롯데 선수들을 향해 각종 오물을 던지고 있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1999년 10월 20일 대구시민야구장. 바람은 약간의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로 가는 티켓을 건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벼랑 끝 승부를 앞둔 야구장은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4시간 19분이 흐른 뒤, 이번에는 한없는 눈물의 바다가 됐다. '환희'와 '탄식'은 가을 밤하늘을 온통 채우고도 남았다.

3승3패. 반드시 승자를 가려야 하는 7차전. 삼성 선발 노장진과 롯데 문동환은 팽팽한 투수전을 이끌면서 플레이오프 최고의 명작 드라마를 시작했다.

경기 초반의 정적은 삼성 이승엽과 김기태의 솔로홈런이 터져 나오면서 균열이 생겼고, 곧 이은 롯데의 반격은 환호하던 삼성 팬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날아든 물병 하나를 신호탄으로 대구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 버렸고, 이 사건은 결국 삼성이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고개를 숙이게 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일명 호세 방망이 투척사건으로 불린 사건의 발단은 삼성이 2대0으로 앞서가던 6회초 롯데의 검은 갈매기 호세가 추격의 고삐를 당기는 중월 1점 홈런을 친 뒤 벌어졌다.

호세는 대구팬들의 야유 속에 그라운드를 돌았고, 3루 베이스를 도는 순간, 호세 앞을 가로지르는 물병 하나가 지나갔다. 흠칫했지만 그대로 달려 홈 베이스를 밟은 호세에게 이번에는 1루쪽 관중석에서 뭔가가 날아들었고, 그것은 호세의 급소를 맞히고 말았다.

호세는 펄쩍펄쩍 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동시에 더 많은 오물이 호세를 반기러 나온 롯데 선수들에게 날아들었다. 호세는 만류하는 동료를 뿌리치고, 방망이를 집어들어 1루 관중석을 향해 던져버렸다.

심판은 호세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이에 롯데 선수들은 이대로는 경기를 못하겠다며 가방을 둘러멨다. 매너를 저버린 관중 앞에선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코치와 프런트의 만류로 경기장 끝자락까지 나갔던 롯데 선수들은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눈빛은 분노와 필승의 각오로 타오르고 있었다.

삼성 최무영 운영팀장은 "관중의 오물 투척과 호세의 퇴장은 롯데 선수들을 자극했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며 "그 후 롯데 선수들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으며 삼성을 궁지로 몰았다"고 말했다.

또다시 난동을 피우면 삼성의 몰수패를 선언하겠다는 심판의 공식 발표에 그제야 관중은 진정했고, 이후 엎치락뒤치락하는 명승부가 벌어졌다.

속개된 경기서 타석에 들어선 롯데 마해영은 곧바로 홈런을 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롯데 선수들은 더그아웃을 나와 홈런의 기쁨을 만끽했고, 마해영은 더그아웃 앞에서 헬멧을 벗어 바닥에 내치며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구 관중에게 각인시켰다.

노장진이 7회 선두타자 조경환에게 안타를 내주자 초조해진 삼성 서정환 감독은 임창용을 마운드에 올렸으나 김응국에게 중전안타를 맞으며 2대3으로 역전을 당했다. 그러나 삼성도 뒷심을 발휘했다. 8회, 무사 2루에서 김종훈과 이승엽의 연속타자 홈런으로 5대3으로 재역전에 성공한 삼성은 그대로 경기를 끝낼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티켓을 받기까지 남은 1이닝을 임창용이 버텨주지 못했다. 9회초 대타 임수혁에게 믿기 어려운 2점 홈런을 맞고 만 것. 삼성은 결국 연장 11회 김민재에게 결승 적시타를 내줘 손에 쥐었던 한국시리즈 티켓을 롯데에 건네고 말았다.

그해 삼성은 처음 실행한 양대리그서 매직리그에 소속, 73승2무57패를 기록하며 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 제패를 꿈꾸고 있었다. 임창용, 노장진, 김현욱, 김상진으로 보강한 마운드와 국민타자로 발돋움한 이승엽은 감히 다른 팀이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한 삼성을 만들어 놨다.

삼성은 플레이오프서 만난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그저 그런 상대로 여겼고, 한국시리즈 우승에 앞서 몸 풀기를 하는 스파링파트너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997년부터 2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면서 암울한 시기를 보낸 롯데는 1999년 박정태-호세-마해영으로 이어지는 클린업트리오, 문동환'주형광을 축으로 하는 선발진의 힘으로 매직리그 2위에 오르며 대이변을 잉태하고 있었다.

삼성은 대구 1차전에서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5대4로 승리한 데 이어 2차전도 6대2로 잡으며 롯데의 반란을 잠재우는 듯했다. 부산 3연전 첫 2경기에서도 1승1패를 거두며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5차전, 9회말까지 5대3으로 앞서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뒀던 삼성은 9회말 1사 1,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호세가 임창용으로부터 끝내기 역전 3점 아치를 쏘아 올리며, 반전드라마를 준비했다. 대구 6차전에서 마해영의 선제 3점포에 힘입어 6대5로 승리, 최종 승부를 7차전까지 몰고 갔고, 결국 삼성에 뼈아픈 패배를 안기며 삼성을 반전드라마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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