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뽑은 게 기억에 남아요. 무서웠지만 안 울었어요."
21일 찾은 대구 효명초교 1학년 1반 교실. 막 수업이 끝난 참이었다. 교실 뒷문에는 이 학급 담임인 최순나(47) 교사가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25명의 꼬마들은 한 명씩 최 교사와 눈을 마주치고 하루 중 가장 기억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최 교사와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한 뒤 교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오늘 건강검진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했거든요. 낯선 경험이어선지 기억에 많이 남나봐요."
학교폭력이 사회문제화하면서 학생, 학부모와 교사간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상대방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도 많다. 효명초교 최순나 교사 또한 그 같은 경우다.
학급 홈페이지는 최 교사의 주요 소통 수단. 알림장 편지가 아이들과의 교감 수단이라면 학부모를 위한 것은 교단 일기다. 매일 적는 교단 일기 코너에는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올리고 수업 내용과 소감 등을 꼼꼼히 적고 있다.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려면 자녀의 학교 생활을 옆에서 본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다행히 글쓰기가 취미여서 귀찮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최 교사 학급 아이들도 일기를 꼬박꼬박 쓴다. 다만 최 교사는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주려고 그날그날 학교에서 배운 내용, 활동을 적도록 유도한다. 학생의 일기를 교사가 읽는다는 것이 프라이버시 침해로 생각될 수도 있는 부분. 최 교사는 아예 학기 초 학부모들에게 안내장을 보내 글쓰기 공부를 위한 일기이며 모두 함께 돌려보는 것이라고 밝혀 오해 소지를 없앴다.
"일기 쓰기를 숙제로 생각하지 않도록 학교 생활 중 짬을 내 쓰도록 합니다. 1년 동안 아이들이 쓴 일기는 학습장과 함께 제가 보관했다가 학년 말 제본해서 일일이 나눠 줘요. 아이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데 그냥 묵혀두기 아깝잖아요. 아이들이 자라면 소중한 추억이 될 겁니다."
최 교사와 1년을 보낸 뒤 아이들이 받는 선물은 또 있다. 최 교사는 아이들의 그림, 모형 등 학교에서 만든 작품을 하나하나 카메라 렌즈로 담고 활동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사진첩에 넣어 선사한다.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으니 학부모들도 반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자녀가 최 교사의 학급에 다녔던 김갑득 씨 또한 최 교사를 잊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평생 간직할 선물을 여러 개 주셨어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정을 주셔서 정말 고맙죠."
최 교사의 학급 운영에는 특별한 것이 또 있다. 앞산 나들이가 그것이다. 최 교사는 5, 6월 2주에 한 번씩 토요일에 원하는 아이들 대여섯 명과 학교 인근 앞산에 올랐다. 정해 둔 프로그램은 없었다. 지식을 배우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 부담없이 뛰놀며 행복감을 맛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 아이들과 최 교사는 물이 있으면 물놀이를 하고, 예쁜 꽃이 보이면 함께 관찰하며 산에 올랐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졌다.
"교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학교에서 행복감을 맛보지 못한다면 그의 인생이 행복할까요? 교사가 행복하려면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아이들이 먼저 행복해야죠. 그러려면 교사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합니다. 작은 노력이 모여 교감이 이뤄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요. 자연히 웃을 일도 많아지고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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