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소형차 같은 삶

불의의 교통사고였다. 그와 나는 함께 그 사고를 당했다. 나의 부상은 경미했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현장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그를 진료한 의사는 담담한 어조로 가망이 없다는 말을 전했다. 이미 사고현장에서 상태의 심각성을 봤기 때문에 나 또한 의사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나를 보자 그는 애써 그 노란 웃음을 지어 주었다.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제발, 다시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도 그것이 부질없는 기대라는 걸, 더 이상 나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13년을 나와 함께했다. 내가 회사를 시작하던 그 어려운 시기에 처음 만나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함께 겪었던 나의 분신과도 같은 놈이었다. 거래처를 가든 촬영현장을 가든 여행을 가든 그는 언제나 나와 동행을 했다. 그가 있어 지금까지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고 아내와 결혼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신혼여행도 그와 함께 갔다. 지금까지 호구를 하고 딸과 아내와 함께하는 현재의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것도 그가 있어 가능했다.

밝히자면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소형세단'이라 명명된 노란 경차다. 그와 함께할 때 나는 가장 편안한 안정감을 느꼈다. U턴, 주차,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 마치 내 몸과 하나처럼 착 달라붙는 일체감은 비할 데가 없었다. 부담 없는 유지비도 내 처지와 꼭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그에게 속삭였다. "나는 너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중형차나 고급 세단같이 제 무게가 스스로 부담스러운 삶이 아닌 가벼워서 날렵하고 부담 없이 편하고 낭비 없어 청빈한 그런 삶. 아무 곳이나 머무를 자리를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소탈함에 어디로나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가볍고 자유로운 삶. 사실 중형이나 고급 세단 같은 삶은 화려하고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저것 걸리는 것도 많고 따져야 할 것도 많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래서 스스로 제약받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13년을 함께했고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사랑하는 애마 '욕망이'는 갔다.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욕망아, 네가 있어서 참 행복했다. 좋은 곳으로 가라. 다시 살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대신 허세 부리지 않던 너의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평생 기리며 살게."

그가 간 후 나는 또다시 소형차 한 대를 구입했다. 동창모임에 갔다. 그런데 소형차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은연 중에 동창들의 고급 세단을 피해 구석진 자리에 주차하는 이 심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병동<CF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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