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신의학의 한계

"정신의학은 정신적으로 병들었다." 올해 타계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이 한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그는 1972년 대학원생, 주부, 화가 등 '정상인' 7명을 정신병자로 꾸며 미국 내 여러 곳의 정신병원으로 들여보냈다. 물론 그도 함께였다. 목적은 정신과 의사가 정신병자와 정상인을 얼마나 잘 구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의사를 속이기 위해 입원 전 5일간 샤워, 면도, 양치질을 중단했고, 의사와의 면담에서는 환청을 호소하는 등 완벽한 연기로 정신병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입원 후에는 정상인으로 행동했다. 로젠한은 병원의 모든 지시를 따르고, 권리를 주장하고, 다른 환자들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돕고, 법적 조언을 해주고, 탁구 시합을 하고, 많은 기록을 남겼다. 정신과의사는 이를 과대망상적 정신분열 증상으로 진단했다. 다른 병원에 들어간 실험 지원자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6명은 정신분열, 1명은 조울증). 로젠한은 이를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미국 정신의학계는 분노했다. 한 정신병원은 거짓 실험이라며 로젠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가짜 환자를 보내라. 확실히 가려내 주겠다." 로젠한은 흔쾌히 응했다. 석 달 후 정신병원 측은 확신에 차서 "로젠한이 보낸 가짜 환자 41명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 "그래요? 나는 단 한 명의 가짜 환자도 보내지 않았는데요?" 그의 실험은 정신의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오면서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엄격한 지침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1980년에 나온 미국정신의학협의회의 진단 지침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제3판(DSM-Ⅲ)이다. 하지만 DSM-Ⅲ는 오히려 단순한 수줍음을 우울증으로 둔갑시키는 등 무려 112가지의 새로운 질환을 '발명'했고, 1990년대 미국인의 절반을 '잠재적 정신병자'로 모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1세기의 정신의학은 이런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부가 정신질환자의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정신과 상담만 받아도 정신질환자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반가운 일이긴 하나 과연 진단이 얼마나 정확할지 걱정이 앞선다. 정신질환의 조기 치료를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진을 하겠다는 것도 의도와 달리 정신병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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