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김조광수 감독님에 대해서조차 잘 몰랐어요. 제가 관심 있는 분야를 연출한 분도 아니셨거든요. 하지만 이번 영화 찍고 제대로 알게 됐죠."(웃음)배우 김동윤(32)은 2개월 남짓 완벽한 '게이'가 됐다.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에서 김동윤을 벗고 전혀 다른 인물 '민수'가 됐다. 동성 친구를 이성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김동윤은 처음에 게이들이 사용하는 '침대 용어'가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성격도 변했고, 남성에게도 끌리는 감정이 생겼다. '혹시?'라는 의심을 그에게 던져도 당분간은 괜찮다. 오해는 마시라. 동성애자 연기를 너무 잘 했다는 표현이다.
"짧은 시간 민수로 살면서 간접적으로 많이 느꼈죠.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들에게 '불쾌한 기분이 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라고 알게 됐어요. 감독님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물론 있죠. 우리나라에 성 소수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촬영하면서 동성애자를 향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고, 시선도 달라졌어요."
'두결한장'은 결혼 적령기 게이 커플(김동윤'송용진)과 레즈비언 커플(류현경'정애연)이 현실의 타협안으로 위장결혼을 감행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 주위에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의사 민수(김동윤)와 의사 효진(류현경)은 비상 돌파구로 위장결혼을 선택, 나름대로 '행복한' 일상을 꾸려 나간다.
김동윤은 "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동성이 이성보다 좋아지기도 하고, 서로를 잘 알게 돼 편해지는 관계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민수에 몰입했다.
많은 배우들이 동성애자들의 사랑이야기 때문에 민수 역을 거절했다. 김동윤은 혹시 김조광수 감독이 출연 요청을 해왔을 때 겁을 먹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또 잘생긴 외모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김동윤이 김조광수 감독에게 섹스어필하진 않았을까.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홍석천 씨를 만난 적이 있거든요? 동성애자들은 처음 만났을 때 오히려 더 조심하세요. 악수를 해도 상대가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조심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 보고 호감이 있어도 표현 안 하려고 한대요. 그런 심리 상태를 알게 되어서인지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별다른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또 이미 (19세 연하) 남자친구가 있다고 밝히셨거든요."(웃음)
#딴 배우들은 배역 거절…난 만족
'두결한장'은 실제 김조광수 감독의 주변 인물 이야기가 반영됐다. 위장 결혼한 커플이라는 소재도 실제 주변 이야기다. 김동윤이 연기한 민수 캐릭터도 실제 인물이다. 김동윤은 "이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감독에게도 '레슨'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나름대로 게이 커뮤니티에 들어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뜻도 모르는 용어로 대사를 할 순 없었으니까"라며 당연한 듯 웃는다.
민수가 감정을 폭발시키며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신은 특히 인상 깊다. 김동윤은 "지금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만족하지 못하고, 아쉽다"고 했다. "수백 번 읽어봤고, 충분히 알겠다고 해서 자신 있게 촬영했는데 아무래도 한계였나 봐요. 감독님이 커밍아웃 하신 분이잖아요? 그 느낌과 감정을 몸으로 흡수해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수치로 따지면 57.2% 정도 만족하죠."(웃음)
김남길(후회 하지 않아'2006), 유아인(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 이제훈(친구사이?'2009) 등 김조광수 감독과 작업해 스타가 된 이들이 많다. 김동윤 역시 "기대는 된다"고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끝이 없으니 적당히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형도 깜짝 등장, 연기 칭찬해줘
"전 좋은 영화를 찍은 것에 만족해요. 어떤 위치에 올라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오래 연기를 하고 싶거든요.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제 데뷔 12년차인데 어렸을 때는 정상만 보고 달렸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김조광수 감독님과 배우들을 만난 걸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예산 영화인데 적자만 보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야 '두결한장' 팀이 회식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김조광수 감독의 다음 작품에도 출연 요청이 있으면 '콜'이다. 단, 베드신만 없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극중 상대역 송용진과 혀까지 이용한 격렬한 키스신에 대한 느낌을 물으니 "까칠한 수염 빼고는 여자와 키스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며 "마인드컨트롤로 촬영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동윤의 형도 배우다. 형인 김혁은 '두결한장'에 김동윤의 연인으로 나오는 송용진의 첫 번째 애인으로 잠깐 등장했다. "감독님이 그러는데 우리 형이 게이들이 좋아하는 얼굴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형이 시나리오를 보더니 재미있겠다고 흔쾌히 허락했죠. 솔직히 저 형한테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이 정도로 해낼 줄 몰랐다'고 칭찬해줬어요. 자기 동생 같지 않다고요(웃음). 솔직히 나태해질까봐 말 안 한다는데 이번엔 말해줘서 좋았죠."
김동윤은 촬영이 모두 끝나고 드라마 KBS 1TV '산너머 남촌에는 2'에 복귀했을 때 민수 캐릭터가 남아 있어 다른 배역에 몰입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민수에서 금방 벗어날 줄 알았는데 꽤 오래 잔상이 남아있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수 캐릭터의 여운이 좋기는 하단다.
아이가 너무 좋다는 그는 아직 결혼 전이지만 아이가 빨리 생겨 이것저것 챙겨주고 같이 놀고 싶다고 바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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