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펑(1940~1962)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모범 병사로 1962년 랴오닝성 푸순에서 사고로 순직했다. 1963년 3월 5일 마오쩌둥(毛澤東) 당시 중국공산당 주석이 '레이펑 동지를 배우자'(向雷鋒同志學習) 고 선언하면서 문화대혁명 후 대대적인 학습 열풍이 불었다. 이후 중국 정부는 매년 3월 5일을 '레이펑 학습 기념일'로 지정해 대대적인 행사로 그를 떠받들고 있다.
이처럼 레이펑의 희생 정신을 본뜬 '레이펑차'가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장쑤(江蘇)성 롄윈강신푸버스정류장(連云港新浦汽車站).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곳에서 승객들은 크고 작은 보따리를 들고 500m 떨어진 기차역까지 가야한다. 이 500m의 거리에 무료로 승객들을 실어나르는 자동차가 바로 레이펑차다. 이 차는 단지 승객을 실어나르는 것뿐 아니라 승객의 고통과 애환을 함께하고 있다.
레이펑차에는 운전기사뿐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위하는 승무원이 팀을 조직해 여행객들의 안전을 돌보고 있다.
이 차를 타고 가던 중 심장병으로 혼절한 승객을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해주기도 하고, 맹인 자매가 잃어버린 지갑을 전 역에 일일이 연락해 찾아주는 것은 물론 이 자매의 안전한 등교는 물론 5명의 가족 중 4명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에게 필요한 생활필수품까지 전달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설에는 롄윈강의 한 가구에서 집이 무너지고 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해 일가족이 돼지우리에서 거주하는 일이 벌어졌다. 레이펑 직원들이 이들에게 새 가옥을 지어주고자 한 사실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자 한 기업이 후원금을 쾌척해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레이펑차 직원들은 자기가 맡은 임무 외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심지어 자기의 돈으로 수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레이펑차 직원들의 봉사활동은 49년 전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 70년대 장거리버스가 많지 않던 시절, 고작 몇 명의 승무원이 열차 시간에 늦지 않도록 승객들을 실어날랐다. 당시 첫 승무원이었던 리바오잉(李保英'72) 씨는 "처음에는 멜대를 이용해 승객과 화물을 실어나르다 그 후 어려움을 안 전문가들이 나무차를 만들어 줘 운행했는데 바로 레이펑차였다"고 말했다. 멜대로 시작한 레이펑차는 이후 나무차, 삼륜인력거, 축전지차를 거쳐 현재의 관광여행차로 발전했으며 직원수도 5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커졌고 봉사정신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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