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백설희

1950년대 애잔한 추억의 스크린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이 노래의 가사를 잔잔히 읊조리면서 입으로는 벌써 귀에 익은 가락을 흥얼거리고 계시군요. 해마다 봄이 되면 가슴 속에서 저절로 떠오르는 참 좋은 가요작품입니다.

1950년대 시절, 흑백필름으로 제작된 영화의 한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돌아갑니다. 그 애잔한 추억의 스크린 위에는 지금도 눈물과 배고픔, 고통과 아우성이 배어 있습니다. 축음기의 사운드박스가 SP음반의 골을 따라 서걱거리며 돌아갈 때, 그 흐느적거리던 아련한 음향 속에서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허연 버짐이 피어있던 골목 친구들,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로 저물어가던 공휴일 오후, 그때 하늘에서는 경비행기가 광고전단을 뿌리며 날아가곤 했지요. 갑자기 올려다 본 하늘이 눈앞에서 핑 돌고, 어지럼증과도 같은 허기가 스쳐지나갈 때 어김없이 들려오던 가수의 노랫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봄날은 간다'입니다. 소리의 근원을 더듬어 찾아가보면 어김없이 누님의 방 창틀에 단정하게 올려놓은 진공관 라디오, 그 빛바랜 천을 적시며 흘러나오던 가수 백설희의 목소리였답니다.

1950년대 초반, 작사가 손로원 선생이 대구로 피란 내려와서 칠성시장 부근에서 고단한 세월을 살아가던 시절에 이 노래의 가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장소 배경이 된 곳은 필시 대구 근교의 달성, 칠곡, 경산, 가창 중의 어느 한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나중에 서울로 환도한 뒤 유니버살레코드에서 이 음반을 내었지요.

이 노래의 첫 대목에 나오는 '연분홍 치마'는 당시 소녀들이 즐겨 입던 당홍치마를 말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곱씹어 읽어보면 이 대목에서 연분홍 진달래를 한 아름 꺾어들고 두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산길을 내려오던 계집아이들의 재잘거리던 광경이 사진처럼 연상되는 것은 어쩐 일일까요? 그 소녀들의 단발한 머리들, 잘근잘근 옷고름을 씹을 때 코끝으로 방울방울 떨어지던 눈물의 서러움을 기억하시는지요?

이젠 그 흔하게 눈에 띄던 성황당도 아주 사라지고 없는 시대, 개발과 발전이 반드시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압니다. 남겨두어야 할 것마저 개발의 폭풍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파괴되고 소멸되어버린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2절 가사도 우리 가슴을 잔잔한 봄비처럼 촉촉이 적십니다.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이란 대목에 자꾸만 눈길이 머뭅니다. 털털거리며 신작로 길을 달려가던 버스는 꽁무니의 자욱한 흙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키가 큰 미루나무가 그 신작로 주변에 우두커니 서 있었지요. 일본의 제국주의자 침략자들이 이 땅에 들어와서 맨 처음 닦았던 것이 신작로였다는 사실을 혹시 아시는지요? 그 길은 일본군 작전도로였고, 그들은 이 땅에서 생산되던 많은 양곡과 물자를 수탈하여 일본으로 실어 날랐던 것입니다. 침략자들이 닦아놓은 신작로를 조금 더 확장하고 그 위에 아스팔트를 덮은 것이 요즘 우리가 달리는 지방도로입니다.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지금 정신없이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저 상춘객들은 과연 흘러간 시절의 아픈 내력을 조금이라도 알기나 하는지요?'

영남대 국문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