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백야에서 삶을 찾다 /오종우 /예술행동

문학을 통해 보는 러시아인의 삶과 예술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숲이 끝나면 넓은 초원이 이어지고, 여름이 되면 밤이 깊어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된다. 유난히 춥고 긴 겨울 탓에 문학과 예술이 발달했다는 러시아를 생각하며 오종우 교수의 '백야에서 삶을 찾다'를 읽었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등 세 작품을 중심으로 신과 인간, 존재의 의미, 격동의 역사 속 다양한 인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때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생애 대부분을 살며 작품을 썼던 곳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네바 강과 고색창연한 건물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뒤편의 음울하고 비참한 골목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았다. 그는 영혼의 심연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해 인간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지를 밝히려 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완성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모욕과 수치, 증오와 보복, 부친 살해와 자살 등으로 이어지면서 인간 영혼의 온갖 추악한 면을 끔찍하고 섬뜩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하지만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으며, 영혼이 부활하여 새로운 삶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전망을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환호'로 끝을 맺는다.

행복한 삶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이면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의무이기도 하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한 알료샤는 삶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세계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한마디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추악한 죄와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구원을 믿고 삶을 긍정한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게 불행하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고급 관리의 아내인 안나가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를 사랑하게 되면서 파멸해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안나 카레니나와 똑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 레빈이 등장한다. 그는 톨스토이의 분신과 같은 인물로 농촌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면서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

안나와 레빈의 삶이 두 축을 이루는 '안나 카레니나'는 두 사람이 각기 살아가는 도시와 농촌을 대비시킨다. 안나가 거처하는 도시의 사교계는 그녀가 간절하게 탈출하고 싶어 하는, 주로 가면을 쓴 위선의 세계다. 레빈이 살아가는 농촌은 기쁨과 괴로움과 노동이 있는 치열한 생활의 공간이다.

톨스토이는 익숙한 모든 것을 언제나 낯설게 바라보며 작품을 썼으며, 그것이 창의성의 바탕을 이루었다. '낯설게 하기'는 현재까지 모든 예술 이론들이 기반으로 삼는 가장 중요한 예술 원리로 다뤄지고 있다. 열일곱 살 가을 무렵부터 늘 일기를 쓰고 계획표를 짰으며, 이런 습관이 곧 문학 작품을 쓰는 일로 이어졌던 톨스토이는 자연스러운 진실을 찾고자 평생에 걸쳐 고뇌하였으며, 이것이 문학세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는 세계대전과 혁명, 내전,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마음 아프도록 겪은 시인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우리는 어두운 현실과 죽음의 현상들 속에서 살아간 지바고의 삶과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생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20세기에 인류가 이룩한 업적 열 가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 이 소설에는 격동기 러시아를 살다간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녹아있다.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은 역동적인 생명력의 표출이며,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이끌리는 사랑으로 죽음을 이기는 강한 생명의 현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광활한 자연과 역사 속에서 태어난 러시아 문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행복한 경험을 하였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