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大幹 숨을 고르다-황악] (27) 수도산의 비경

비경의 상징 팔경·구곡 수도산엔 둘 다 있으니 여기가 바로 선계 인가

무흘구곡의 제9곡인 용추폭포. 높이가 17m에 이르고 주변 경관이 절경이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곳으로 가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고 전한다.
무흘구곡의 제9곡인 용추폭포. 높이가 17m에 이르고 주변 경관이 절경이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곳으로 가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고 전한다.
수도산과 수도암 그리고 계곡 및 가야산, 단지봉. 금오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법전대 거북바위.
수도산과 수도암 그리고 계곡 및 가야산, 단지봉. 금오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법전대 거북바위.
대가천에 세워져 있는 무흘구곡. 제6곡인 옥류정은 잘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다.
대가천에 세워져 있는 무흘구곡. 제6곡인 옥류정은 잘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다.
청암사 길목 바위에는 청암팔경이 새겨져 있다.
청암사 길목 바위에는 청암팔경이 새겨져 있다.

'팔경(八景)과 구곡(九谷)'.

금수강산 한반도에는 팔경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 많다. 예로부터 '단양팔경' '관동팔경' 등은 잘 알려져 있다. 팔경은 뛰어나게 이름다운 여덟 군데의 경치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에는 자치단체에서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을 팔경 또는 십경이라고 곧잘 이름을 붙인다. 팔경은 중국 후난성 동정호 남쪽의 샤오수이강(瀟水江) 과 상장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대표적인 아름다운 경치를 '샤오상(瀟湘)팔경'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됐다. 석양빛 가을달, 밤비, 저녁 무렵의 눈 등 주로 해질 무렵의 절경을 시인'묵객들이 시와 그림의 주제로 다루면서 유명해졌다.

'구곡'은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빗대어 많이 불린다. 중국 남송 때의 학자 주희(주자)가 무이산 아홉 계곡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고는 자연경관뿐 아니라 은근한 상징과 은유로 자신의 학문적 성취까지 묘사해 '무이구곡가'를 지어 선비들이 이를 많이 모방했다. '고산구곡' '도산구곡' '벽계구곡' 등은 '구곡'을 대표한다.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북에만 27개의 '구곡원림'(九谷園林)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천 수도산에는 빼어난 경치로 인해 '팔경'과 '구곡'이 모두 존재한다. '청암팔경'(靑岩八景)과 '무흘구곡'(武屹九谷)이 그것이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벌써 해수욕장이 문을 열었고 장마도 눈앞에 다가왔음을 예보하고 있다. 남쪽으로부터 태풍 얘기도 들려오는 등 바야흐로 피서철이다. 올여름에는 수도산에서 팔경과 구곡의 정취를 느껴봄이 어떨까.

◆모습을 드러낸 청암팔경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지나서 수도산(불영산)을 찾았다. 산은 한 달 전보다 녹음이 더욱 짙어가고 있다. 증산면 장뜰마을에서 청암사 입구로 들어선다. 얼마 전 모내기를 한 논에는 이젠 벼가 땅 내음을 맡아 한결 풀빛이 더한다. 청암사 입구에 들어 계곡을 따라가면 자연석 바위에 증산 일대의 절경을 묘사한 '청암(사)팔경'을 음각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알아볼 수 있다.

바위에는 '甑峰明月'(증봉명월), '雙溪玉流'(쌍계옥류), '武屹淸風'(무흘청풍), '秋嶺落照'(추령낙조), '龍潭瀑布'(용담폭포), '佛靈洞天'(불영동천), '修道快雲'(수도쾌운), '大山碧庵'(대산벽암)이 세로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새겨져 있다. 수도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한 말이다.

먼저 '증봉명월'은 쌍계사(지금 면사무소) 뒷산인 시루봉 위에 둥글게 솟아오른 달이 절 앞 대가천 맑은 물에 비쳤을 때의 아름다운 광경을 말한다. '쌍계옥류'는 대가천에 세워진 옥류정 정자 앞을 흐르는 맑은 물길이 마치 '구슬이 구르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흘청풍'은 무흘구곡 7곡인 만월담과 이웃하고 무흘정사가 있다. 한강 정구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수도산으로부터 훑어져 내려온 맑은 바람이 공부하는 선비들의 정신을 맑게 해 준다고 전한다. '추령낙조'는 대덕면과 증산면을 연결하는 고개가 높아 항상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 추령(秋嶺) 또는 가랫재라고도 한다. 재를 넘어가는 해가 소나무에 걸린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했다.

또한 '용담폭포'는 무흘구곡의 9곡인 용추폭포의 다른 이름이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며 절벽에서 물줄기가 떨어질 때 나는 웅장한 소리와 물보라가 장관이다. '불영동천'의 '불영'은 곧 부처이고 '동천'은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을 상징하는데 불영동천은 불교와 도교가 합쳐진 이상세계로 곧 불영산에 깃들어 있는 중생들이 부처인 동시에 신선임을 나타낸다.

'수도쾌운'은 스님의 기도처로 명성을 얻은 수도암이 있는 수도산을 구름이 감아 휘도는 광경에 정신이 맑아진다는 뜻이다. 마지막 '대산벽암'은 대산은 큰 산이요 곧 수도산을 뜻한다. 벽암은 계곡의 바위에 온통 푸른 이끼가 끼어 푸르게 보인다 하여 청암(靑岩)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벽암은 청암의 이름이다.

동행한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은 "청암팔경은 최근 조사로 위치와 의미가 밝혀졌다. 팔경 주변을 정비해 빼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구곡의 백미(白眉) 한강 선생의 무흘구곡

김천 수도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큰 줄기가 수도계곡으로 흘러들고 다른 한쪽은 청암계곡을 이룬다. 조선 유학자 한강 정구 선생은 성주 수륜에서 김천 증산에 이르는 대가천과 계곡을 자주 찾았다. 그는 이를 주자의 '무이구곡'에 견주어 '무흘구곡'으로 이름 지었다. 그중 6곡부터 9곡까지는 수도계곡에 속한다.

김천에서 증산을 가려면 속칭 '아흔아홉구비'라는 가목재를 넘는다. 이 고개는 증산 수도산 인근에서 벌채한 나무를 원활하게 실어 나르기 위해 길을 냈다고 한다. 찻길이 다소 험하지만 굽이쳐 돌아가는 묘미가 쏠쏠하다, 황해와 최은희 주연의 '추풍령'이란 영화도 이곳과 청암사를 무대로 촬영했다고 한다. 가목재를 넘으면 증산면사무소가 나온다. 면사무소에서 무흘구곡 6곡인 옥류동(玉流洞)을 만난다. 흰색 암반 위를 흐르는 맑고 깨꿋한 물이 햇볕에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옥류란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바위 위에는 '玉流洞'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최근 복원된 옥류정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뽐내고 읊은 시가 바위에 새겨져 지금도 전한다.

옥류동에서 거슬러 올라 장뜰마을에 이르면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계곡을 감싼다. 제7곡 만월담이다. 바위 앞에 흐르면서 만든 못을 말한다. 태풍 루사 때 피해를 입어 지금은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제8곡은 와룡암이다. 만월담에서 1㎞ 올라간 지점에 바위 형상의 용이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지막은 앞에서 말한 용추폭포다. 높이 17m에서 떨어져 내린 물길이 장관에다 주변 경관 또한 절경이다. 소(沼)에 용이 살다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해 용추(龍湫)라는 이름을 얻었다. 소의 깊이가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었다고 하나 물 깊이는 3m 정도다. 여기서 기우제를 올린 뒤 용소가 울면 곧 비가 내렸다 한다. 폭포 물소리가 10리 밖에서 들릴 정도였다. 이처럼 구곡 중 세 곳이 앞에서 언급한 청암팔경에 포함돼 있어 다시 한번 무흘구곡의 빼어난 경치를 말해 준다.

◆떠오르는 비경'아름다운 숲길

앞에서는 수도산의 예부터 잘 알려진 비경을 소개했다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최근에 조성된 숨은 비경을 찾는다. 먼저 청암사 백련암에서 수도암까지 숲길은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다. 백련암에서 계곡을 따라 오솔길을 오르면 길옆으로 펼쳐진 계곡 경치가 운치를 더한다.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이나 오밀조밀하게 펼쳐져 있는 폭포와 앙증맞은 물웅덩이는 눈을 즐겁게 한다. 바위'나무를 덮은 푸른 이끼를 보면 갈 길을 멈추고 주저앉아 시름을 잊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산길이 어디 쉽기만 할까. 계곡 길이 끝날 즈음 오르막길을 만난다. 하늘만 빠꼼하게 열린 길을 오른다. 때마침 길가에서 먹이사냥을 하던 멸종위기동물인 오소리 한 마리가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숨긴다. 길 주변에 아무렇게나 넘어진 나무들은 저절로 썩거나 부패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원시림 그 자체다. 능선을 올라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지금까지 힘든 여정을 보상해준다. 이정표는 수도산 정상과 수도암 가는 길을 가리킨다. 암자로 가는 길은 완만하고 걷는 데 무리가 없다. 2시간쯤이면 수도암에 닿는다. 수도암에서는 스님들의 포행길인 법전대를 올라볼 만하다. 법전대 거북바위 위에선 수도산 정상은 물론, 가야산'단지봉'수도계곡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또 다른 숲길은 수도산 모티길에서 시작된다. 모티길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숲길'이라는 안내판을 만난다. 2007년 산림청에서 조성해 놓은 길이다. 길이가 3㎞에 이른다. 숲길은 차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게 잘 닦여져 있다. 하지만 길 입구에 자연석을 막아 놓아 차량 출입을 막았다. 청암사~수도암 오솔길이 원시림이 저절로 만든 길이라면 이 길은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는 길이다. 길옆에 꽃과 나무에 대한 이름표를 붙여 놓았으며 길이 평탄해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적격이다. 특히 숲 길 중간쯤에 조성된 잣나무 숲이 볼만하다. 일제강점기에 소나무를 벌채한 후 잣나무 조림을 했는데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피서철 연인'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산림욕도 하고 담소(談笑)의 시간을 갖는 장소로 추천하고 싶다.

글'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 작가 texca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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