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당신의 향기

초록 향연이 여울져가고 여름 기운이 어느새 곁에 와서 함께 어울린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꽃을 돌보다 짬을 내 마당을 거닐면 간간이 들꽃이 수줍은 듯 돌무더기 틈새서 반긴다. 끊임없이 피고 지는 모양이 가녀리고도 질기다. "들꽃은 수고도 하지 않지만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한 송이 들꽃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는 못했다"는 성경의 한 구절. 무릇 대왕의 영화가 들꽃보다 못하다니….

들꽃의 의미가 확 다가와 올여름을 미리 헤아리게끔 돕는다. 이럴 즈음. 들꽃과 어울리는 연꽃도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경주 안압지 인근의 연밭에도 멀쑹멀쑹 연꽃이 피기 시작했고 상주 공갈지의 연꽃은 그 소식이 자못 궁금하다. 여름이 더 가기 전에 그곳들의 연 방죽을 한 차례 거닐면 어떨까. 사랑하던 원나라 미희에게 연꽃 한 떨기를 꺾어주며 석별의 정을 나눈 고려 충선왕의 여유가 운 좋게 건져질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러다 시라도 한 줄 외면 올여름은 충분히 무사하리라.

연잎을 스치는 살랑바람이 잔잔한 연잎 물결을 일으키면 연꽃과 이파리가 서로 속삭이듯 간질이듯 밀려왔다 밀려간다. 가끔 불어 닥친 강한 들바람은 너울너울 녹색의 파도를 한없이 밀려 보내고, 연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후두둑 소리를 내면 자연의 소리와 그 빗방울이 모여 연잎 위를 요리조리 굴러다니다가 제 무게를 못 이겨 한쪽으로 또르르 굴러내린다. 연잎은 기우뚱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후두둑~또르르-출렁! 사진작가들은 이 자연의 군무를 놓칠세라 하루를 셔터와 씨름한다. 그래서 연꽃 사진이 저렇게 태어나질 않는가.

혜원 신윤복의 연당야유도(蓮塘野遊圖)에는 선비들이 연꽃이 필 무렵이면 이른 새벽 말을 몰아 서대문 밖 연지에 모여 그 연꽃 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쪽배를 타고 방죽으로 스며들어가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연꽃은 물에서만 피는 게 아니고 이렇게 그림 속에서, 고구려 벽화와 고려청자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늘 피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속은 비어서 사심이 없고 가지가 뻗지 않아 흔들리지 않는 연꽃을 좋아한다. 진흙 속에서 나왔어도 때 묻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은 그런 모습을 항상 간직하기에 그 의지는 분명 다른 꽃과 다른 품위를 지니고 있다.

연꽃은 이렇듯 그 예찬만으로도 능히 마음이 청결해지고 곱디고운 심성과 넓은 아량이 생산되는 듯하다. 거짓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만 나는 향이랄까. 당연히 연꽃향이 아니라도 자신의 기품에 따라 자기만의 향기를 지닐 수 있다면 바로 그 향이 연꽃 향에 버금가는 고귀한 당신의 향기가 아닐까. 올여름에는 당신의 향기를 맡고 싶다.

김해숙 다사꽃화훼단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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