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8:45 출근,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동료들과 아침인사를 나누다. AM 9:00 이메일을 열고 일과를 체크한다. 공연단체와의 계약 체결 서류와 상반기 공연 실적 보고 자료를 작성하고 공연비 지출 관련 서류를 빠트리지 않고 챙겨 회계팀에 넘겨준다. AM 11:00 2주 후에 있을 대관공연팀과의 스태프 회의. AM 12:00 월간문화 기자와의 점심 미팅. PM 1:30 사무실에 돌아오니 공연장 대관을 신청하려는 민원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PM 3:00 A예술재단과 공동으로 기획하는 프로젝트를 위한 실무자들 간의 사전 협의에 참석한다. PM 5:30 홍보물 시안을 확인해 달라고 인쇄소에서 몇 번째 독촉 전화가 온다.
PM 6:00 공식적인 퇴근 시간, 그러나 무의미하다. 공연이 있는 날엔 공연을 진행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마무리하지 못했던 계획서나 자료를 작성한다. 주5일제근무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공연 시즌 때는 월화수목금금금이 계속되고 공연이 없는 월요일, 하루 정도를 쉰다.
공연기획자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TV 드라마처럼 단숨에 픽업될 가능성은 물론, 처음부터 기획을 맡을 기회도 없다. 여유로운 개인 시간이나 두툼한 월급 봉투를 바란다면 오래 머무르기 어렵다. 유명 공연 전문 제작사나 대형 국'공립 공연장 같은 경우에는 업무가 세분화, 전문화되어 있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온갖 자잘한 일에 골머리를 앓고, 예술가의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하고, 관객의 반응에 목숨 걸고, 자기가 기획한 공연을 편안히 앉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 공연기획자이다.
필자가 공연기획자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무대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그리고 애정이 바탕이 된 것 같다. 공연을 통해 예술가와 관객, 그리고 기획자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함께하며 예술적 환상과 메시지를 공유하고 정서적인 소통을 이루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 때 필자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이들에게 필자는 냉정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보기보다 더 힘들고, 많은 인내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길이다. 많은 작품을 경험해 보아야 하고 많은 작품에서 부딪혀 보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인지를, 이 일이 정말 재미있는 것인지, 그냥 무대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뛰는지…, 가슴 없이 머리만으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다.
공연기획은 공연 예술의 기획, 경영, 마케팅, 연출 등 총괄적인 계획 수립과 모든 집행 과정을 말하며 생산자인 공연예술가의 공연 작품을 보다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수단으로 수용자인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말한다.
공연기획자는 고도의 전문적인 실무 기술과 학문적 이론을 갖추고 예술 분야의 특수성 등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하며 특히, 의사소통의 기술에 능숙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성, 동료, 리더로서 또는 협상자로서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해줄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공연기획자는 적어도 예술에 대한 애정과 창조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기대받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예술가들과 더불어 예술의 질적 향샹, 저변 확대, 미래에 대한 대응 방안을 확실하게 다져주고 열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적극적인 열정이다. 공연을 위해 사생활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몰입하는 것, 다양한 경험과 현장 감각은 필수다. 배우와 스태프, 관객을 비롯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홍보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진행해야 하므로 낙천적이고 활발한 성격은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
공연기획자에게 있어서 목적과 수단의 왜곡은 경계되어야 할 가장 위험한 요소이다.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예술인으로 하여금 훌륭한 작품의 창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고, 향수자들에게는 원활하게 작품을 공급함으로써 그들의 정신적 영역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예술을 빙자해 예술가를 속이고 공연을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다면 결과적으로는 예술 행위 자체를 타락시키고 향수자들의 수요를 감소시키게 될 것이다.
김아미/봉산문화회관 공연기획담당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