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간절히 기도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그 모순된 현상은 지금 이순간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다면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과 스스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만나면, 어떤 대화가 오갈까.
이 책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열 일곱 살 요한네와 몇 번 자살을 시도한 적 있는 동갑내기 제니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된다. 요한네의 인터뷰를 신문에서 보고 제니가 처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둘의 관계는 시작된다.
열일곱살, 삶의 가장 열정적이면서도 불안한 시간을 통과하는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처지에 있다. 요한네는 두 살짜리 딸 요니네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시한부를 선고받고 '정말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따뜻한 여름을 꿈꾸고 있지만 내년 여름까지 살 수 없을지 모르는 소녀는 이 순간이 두렵다. 그녀는 딸의 곁을 떠나 관 속에 누워 흙 속에 파묻혀있는 광경을 떠올린다. 유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녀를 두렵게 한다. 살아있지만 동시에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인 요한나는 살과 피를 가진 생명이 아닌, 공기와 바람이 되기 위한 연습을 매일 하고 있다.
반면 제니는 우울증에 빠진 소녀다. 벌써 몇 번이나 손목을 긋거나 약을 먹어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나곤 했다. 제니가 원하는 것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것이다. 여자로 보이기 싫어 씻지도 않고 검정색 옷만 입고 다닌다. 그리고 함께 사는 엄마의 외모 집착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제니는 편지를 통해 지금껏 두 번 성폭행 당한 것, 엄마는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자신을 봐주지 않았던 유년 등 상처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담담한 편지를 통해 조금씩 스스로를 치유해간다. 요한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제니는 계속 편지를 쓴다.
작가는 살았느냐 죽었느냐는 결말이 아니라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다.
'청소년 문학'으로 출간됐지만 성인이 된 우리에게도 감동을 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비중 있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는 날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허락된 시간을 얼마나 충만하게 보내느냐가 결국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은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른 후, 요한나의 딸 요니네가 제니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제니는 우울증이 재발해 끝내 자살하고 만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 '아름다운 삶이란 불완전하고 덧없기는 하지만 순수하고 진실한 삶에서 각자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8천500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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