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너지 음료 중독…건강 담보 '피로 땜질' 카페인 벌컥벌컥

시중에 출시돼 있는 다양한 에너지 음료, 숙취해소 음료.
시중에 출시돼 있는 다양한 에너지 음료, 숙취해소 음료.
밤새워 공부하기 위해 에너지 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을 연출한 사진이다
밤새워 공부하기 위해 에너지 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을 연출한 사진이다

대학생 권모(25) 씨는 요즘 거의 매일 밤을 새우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영상 공모전 참가를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카메라 촬영, 영상 편집 작업 등을 하고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권 씨가 올해 들어 밤을 새운 날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통 중간'기말고사 기간에 각각 2주씩 밤을 새웁니다. 왜냐고요? 벼락치기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평소에도 다른 일 때문에 밤을 새우느라 학과 공부할 시간이 없거든요. 자격증, 토익 시험공부 등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밤을 새우고, 아르바이트하느라 밤을 새우고, 그리고…." 권 씨는 취업과 용돈 벌이 때문에 밤을 새우기도 하지만 실은 최근 출시된 인기 온라인 게임을 하고, 새벽에 하는 유로 2012 축구 중계를 보기 위해 밤을 새우는 이유도 있다고 털어놨다.

◆잠 쫓는 묘약, 에너지 음료

그래서 요즘 권 씨가 습관적으로 찾는 것이 '에너지 음료'(피로회복'자양강장 등의 기능음료)다. 권 씨는 하루에 3, 4개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다. "잠이 오면 몇 백원하는 B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그래도 각성이 되지 않으면 1천원이 넘는 H에너지 음료를 마십니다. 2천원이 넘는 고가의 에너지 음료도 있어요. 이렇게 에너지 음료 3, 4개를 연달아 마시면 잠은 깨지만 대신 평소에 비해 정신이 조금 흐려져요. 그래도 워낙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최대한 눈 떠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에너지 음료를 계속 마시는 거죠."

권 씨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이래저래 밤 새울 일이 참 많다. 그래서 잠을 쫓아주는 '묘약' 삼아 에너지 음료를 습관처럼 찾고 있는 것.

수십여 종 제품이 출시돼 있는 에너지 음료에는 피로 회복과 각성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타우린과 카페인 성분이 다량 들어 있어 젊은 층이 많이 찾는다. 최근 한 업체의 조사결과 에너지 음료 구매자의 41%가 20대, 23%가 10대였다. 국내 에너지 음료 시장은 약 3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1월 2억원가량 팔린 것이 올해 2월에는 30억원가량 팔렸다. 판매량이 1년 사이 10배 이상 늘어난 것.

문제는 에너지 음료 외에는 젊은이들의 잠을 쫓아 줄 다른 대안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데다 피로회복을 돕는 다른 첨가물도 들어 있고, 가까운 편의점, 대형마트 등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어 에너지 음료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것. 한 대학생은 에너지 음료를 '사채 음료'라고 표현했다. "사채란 급할 때 손쉽게 돈을 빌려 쓰는 거잖아요. 에너지 음료도 급할 때 손쉽게 체력을 빌려 줍니다. 물론 다음날 피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잠이 쏟아지지만요. 원금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와 닮았죠?"

젊은이들은 더욱 강한 효과를 얻기 위해 부작용이 우려되는 혼합물을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일명 '붕붕 드링크'라 불리는 혼합물로 에너지 음료에 이온음료, 비타민제를 섞은 것이다. 손쉽게 재료를 구해 만들 수 있어 최근 중'고등학생들 사이에도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붕붕 드링크가 신장 기능에 무리를 주고, 우울증이나 무기력증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심할 경우 뇌기능 장애로 인한 사망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카페인 일일 섭취 권장량은 성인 기준 400㎎이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에너지 음료에는 개당 카페인이 최소 50㎎에서 최대 160㎎까지 들어 있어 권 씨처럼 여러 개를 섭취할 경우 자칫 권장량을 넘기기 일쑤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카페인 일일 섭취 권장량은 125㎎ 정도에 불과해 에너지 음료 단 한 개만 마셔도 위험할 수 있다.

식약청 첨가물기준과 이선화 연구관은 "카페인 과다 섭취 시 불면증, 신경과민, 메스꺼움 등 증상을 겪을 수 있다"며 "개인마다 카페인 민감도가 크게 달라 권장량보다 적게 섭취하더라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개인별로 체질을 파악해 섭취량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약물 맹신 사회

혼자 사는 직장인 박모(35'대구 남구 대명동) 씨. 영업직에 종사하는 그는 한 주에 2, 3일은 술자리를 갖는다. 술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숙취의 고통. 집에 해장국 한 그릇 끓여 줄 사람 없고, 그렇다고 직접 끓여 먹기도 귀찮아하는 박 씨에게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해결 방법은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늘 냉장고 안에 20병 정도를 넣어둔다. 출근할 때 가방에 넣어 가 술자리를 갖기 전 1병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또 1병을 마신다. 효과도 2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술자리와 다음날 출근에 안심이 된단다. "참 신기해요. 아버지가 직장 다니던 옛날엔 어머니가 아침마다 북엇국, 콩나물국을 끓이느라 고생하셨죠. 그런데 요즘은 조그만 기능성 음료 하나만 입에 '탁' 털어 넣으면 해결되니까 말이어요."

고단한 일상을 손쉽게 극복하기 위해 묘약을 찾는 모습은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회식, 거래처와의 술자리 등 잦은 음주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각종 숙취해소 음료를 달고 사는 것.

국내 숙취해소 음료 시장은 약 1천800억원 규모다. 종류만도 수십 종이 넘고, 단순히 음주 후 숙취를 해소해 주는 기능성 음료뿐만 아니라 생수 제품, 유산균 음료 등 음주 전후로 마실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그러면서 숙취해소 음료는 아예 편의점 주류 진열대 옆에 함께 진열돼 '마시고 견디셔'라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숙취해소 음료가 음주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숙취 해소를 돕는 기능성 음료일 뿐 음주로 인한 간 손상, 혈압 상승 등을 치료해주는 약은 아니기 때문이다. 숙취 해소 음료만 믿고 과음을 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얘기다.

보조제 역할을 할 뿐인 약물을 맹신해 아무런 자구노력을 하지 않아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금연 트렌드가 꾸준히 지속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금연 보조제는 담배를 완전히 끊게 만들어 주는 약은 아니라서 본인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다이어트 음료도 마찬가지. 마시기만 하면 체지방을 저절로 분해시켜 준다고 광고하는 음료 제품이 많다. 하지만 결국 운동을 하며 마셔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금연 보조제와 마찬가지로 다이어트 보조제인 셈이다.

약물 맹신은 오남용 문제로도 이어진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마약류 및 남용약물 사용 경험' 통계에 따르면 '발기부전치료제 등 성기능 개선제'를 오남용한 경험이 22%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살 빼는 약'과 '근육 키우는 약'을 오남용한 경험이 각각 19%를 차지했다. '술 깨는 약'이 14%, '공부 잘하는 약'이 12%로 뒤를 이었다. 모두 좀 더 강하고, 빠른 효과를 얻기 위해 약물을 오남용한 것이다.

◆우리 사회 약물 의존증 극복해야

우리 사회의 약물 맹신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릇된 '보약' 문화가 우리 사회의 과잉된 경쟁 분위기와 결합돼 사회적 병리현상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남대 사회학과 허창덕 교수는 "미국 사람들은 운동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려 노력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려 노력한다. 바로 '보약' 개념이다. 우리 문화 속에 깊숙이 내면화돼 있다"며 "건강을 위해 양질의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몸에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광적으로 달려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물이 사회적 경쟁의 도구로 인식돼 지나친 의존 현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학생들이 시험기간마다 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밤을 새우는 것은 '잠들면 또래들과의 경쟁에서 낙오된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시험기간에 자식이 밤을 새우면 '열심히 한다'며 기특해 합니다. 반면 외국 부모들은 '시험기간이니 충분히 자라'고 말합니다."

허 교수는 "마찬가지로 직장인들이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는 것도 '얼른 술 깨고 온전한 상태로 직장에 뛰어들어 경쟁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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