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국 70여만 마리, 5년간 고르고 골라 20마리만 '성골'로

정부 인증 '보증 씨수소' 선발과정

경북도가 경사를 맞았다. 경북에서 2마리의 수소가 정부에서 인정한 보증씨수소로 27일 선정됐다. 2007년 1호를 시작으로 올해 7, 8호째다. 이로써 경북도는 정액 생산이 중단된 1~3호를 제외하고 모두 5마리의 보증 씨수소를 보유하게 됐다.

보증 씨수소는 '한우계의 귀족'으로 불린다. 한 해 전국 약 70여 만 마리의 한우 수송아지 중 5년 간의 치열한 검정기간을 거쳐 20마리 정도만이 보증씨수소로 선정된다. 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 보증씨수소의 산파 역할을 하고 있는 경북축산기술연구소를 찾았다.

◆씨수소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28일 오후 영주시 안정면 묵리 경북축산기술연구소. 9개월 된 수소 5마리가 한 마리씩 분리된 우리 안에 있었다. 1m 남짓한 소의 등 높이는 어른 배꼽까지 왔다. 껌벅거리는 눈은 맑았고 선홍빛 코 주위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아기주먹만한 뿔과 자신의 머리만큼 굵은 목덜미에 두꺼운 주름이 잡혀 있었다. 몸통 털색은 잘 익은 보리처럼 황금빛을 띠었다. 털 모양은 참빗으로 빗은 것처럼 가지런했다. 보랏빛 혀를 길게 빼 짚을 휘감아 입으로 가져갔다.

연구원들은 사료와 짚을 먹고 난 소에 대해 측정에 나섰다. 넘치는 힘 때문에 날뛰는 소와 10여 분 동안 실랑이를 한 뒤에야 소를 잡아맸다. 연구원들은 소의 체중을 재고 자를 이용해 키와 너비를 꼼꼼하게 기록했다.'당대검정'을 위해서다.

보증씨수소 선발은 크게 당대검정과 후대검정으로 나뉜다. 당대검정은 경북도 등 지자체 연구소 3곳과 농협이 담당하고, 후대검정은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가 맡는다.

당대검정을 진행하고 있는 경북축산기술연구소에서 씨수소들은 6개월 간 혹독한 평가를 거친다.

연구소에 들어오는 것부터 쉽지 않다. 한우육종농가, 농협, 축산연구소 등이 소유한 우량 암소와 보증 씨수소에서 난 송아지가 그 대상이 된다. 이들 송아지에 대해 먼저 친자 확인을 한다. 혈액을 채취해 족보 상 나와 있는 부모가 실제 부모인지 혈통을 대조한다. 외모검사도 한다. 코 주위에 검은 점은 없는지 확인한다. 몸의 털에도 황색이 아니라 흰 털이나 검은 털이 없는지 가려낸다.

이렇게 해서 경북축산연구소에서 당대검정을 받는 소는 한해 20~40마리 정도다. 매년 3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검정을 시작한다. 전국적으로 한 해 600여 마리가 당대검정의 대상이 된다.

연구소는 6개월 간 소를 키우며 키, 앞뒤 길이, 가슴둘레 등 10개 부위의 성장속도를 검정한다. 체중과 사료 섭취량을 비교해 사료 효율성도 따진다. 적게 먹고 살이 많이 찌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유전검사도 함께 진행한다. 부모 소들이 윗대에서 어떤 혈통으로 이어져 왔는지 통계학적으로 살핀다. '뼈대 있는 가문'의 소인지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정액심사도 빠지지 않는다. 사정량(1회에 3㎖이상), 정자의 활력(70% 이상)과 기형률(15% 이내), 정자수(1㎖당 5억 마리 이상) 등이 평가받는다. 암소를 대신해 사정을 돕는 기구인 '의빈대'에 잘 올라타는지도 본다. 좋은 정자를 가졌더라도 그만큼 배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북축산기술연구소는 이런 검정과정을 통해 매년 전국에서 40마리를 뽑는 후대검정 후보 중 평균 2~4마리를 배출해왔다. 당대검정을 거친 소들은 충남 서산에 있는 한우개량사업소로 옮겨져 후대검정을 받는다. 이후 최종 보증씨수소로 선정되기까지 총 5년 여의 시간이 소요되는 치열하고 혹독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경북도는 현재까지 총 284마리 중 28마리가 후대검정 대상이 됐고, 최종 8마리만이 보증씨수소가 됐다.

경북축산기술연구소 정대진 박사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간 것처럼 보증씨수소가 됐을 땐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구소 간의 자존심 경쟁

당대검정을 하는 기관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존심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당대검정은 전국적으로 농협중앙회,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 경북도 축산기술연구소 등 4곳에서 진행한다.

매년 보증씨수소 선정이 발표되면 이들 기관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린다. 어느 기관이 더 많은 보증씨수소를 배출하는지 실적이 매년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 심리 아래 다른 기관들의 문제 제기로 보증씨수소 후보에서 탈락하는 소들도 생겨난다. 특히 외모에 대한 지적이 자주 오간다. 축산법이 정한 한우의 '외모심사 기준'에 미달되면 형질이 우수하더라도 보증씨수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북도의 경우 우수한 형질의 소가 다른 기관의 '외모 지적'에 검정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경북축산기술연구소는 지난해 구제역 때 살아 남은 소 6마리를 당대검정을 해 후대검정 후보로 내놓았다. 그 중 1마리가 월등하게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나머지 5마리는 상대적으로 형질이 떨어졌다. 근데 제일 우수한 소에 대해 다른 기관에서 외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했다. 2㎜ 정도 크기의 코에 점이 문제였다. 결국 후대검정 대상에서 탈락했다.

자라면서 외모가 바뀌어 낭패를 보기도 한다. 후대검정을 받는 과정에서 외모 변화로 탈락한 경북의 소도 있다. 체중, 사료 효율, 체형 등 모든 평가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2살 때부터 입 주위에 검은 털이 나기 시작했던 것.

이렇게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평가를 뚫고 최종 선발된 보증씨수소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보증씨수소 1마리는 연간 4만~5만 용기의 정액을 생산한다. 4만~5만 마리의 자손을 거느리는 셈이다. 정액 1용기는 평균 1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씨수소 생산 비용인 10억원을 제하면 연간 30억원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 씨수소는 생애 총 12만 개의 정액을 생산하기 때문에 전체 효과는 100억원에 육박한다.

김병기 경북축산기술연구소 한우연구실장은 "2010년부터 경상북도 자체 명호를 사용할 수 있게 돼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지난해부터는 전체 정액 판매량의 50%를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며 "결국 좋은 씨수소는 경북 한우 전체의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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