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씻기고, 밥 먹이고, 숙제 돌보고‥ 일-육아 병행 '워킹 파파'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육아는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육아에 대한 남자들의 역할 분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자들의 육아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는 추세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육아는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육아에 대한 남자들의 역할 분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자들의 육아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는 추세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남성육아휴직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청년연합 서울시본부가 몇 년 전 개최한 파파쿼터제 도입 촉구 캠페인.
남성육아휴직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청년연합 서울시본부가 몇 년 전 개최한 파파쿼터제 도입 촉구 캠페인.

"슈퍼우먼 뿐 아니라 슈퍼맨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 파파'가 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육아는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육아에 대한 남자들의 역할 분담이 커지고 있는 것. 이에 따라 남자들의 육아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남성 육아 환경은 어떻게보면 여성보다 더 열악하다. 아이 돌보는 남자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고 제도적인 장치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육아전쟁에 뛰어 든 남자들의 애환을 조명했다.

◆아이 돌보는 남자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이성우(35) 씨는 아침마다 세살 된 딸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 출근을 한다. 아내의 출근 시간이 이른 까닭에 딸에게 아침을 먹이고 인근에 있는 처가에 딸을 데려다 주는 일은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아내가 회식을 하거나 야근을 하게 될 경우에는 '칼 퇴근'을 한 뒤 처가에 들러 아이를 데려와 돌보는 일도 해야 한다. 이 씨는 "아내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육아 뿐 아니라 빨래'청소 등 가사 일도 분담하고 있다. 몸이 피곤할 때는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나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자의 육아 부담은 맞벌이 부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박진우(33) 씨는 요즘 술자리와 개인 일정을 가급적 줄이고 돌을 갓 넘긴 딸을 돌보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박 씨는 "평소 육아는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의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 일찍 퇴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건축 설계일을 하는 김모(42) 씨는 아이 돌보는 일에 주말을 고스란히 투자한다. 김 씨는 "평일에는 야근이 많아 아이들 얼굴 볼 겨를도 없다. 그래서 평일 육아는 아내의 몫이 됐다. 두 아들과 씨름하는 아내와 놀아 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주말 동안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높아지는 스트레스 지수

흔히 육아는 '전쟁'에 비유된다. 그만큼 아이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유학을 떠난 아내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한때 전업주부로 살았던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이를 키우면서 주부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그는 "가정적인 성격이라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다 보면 아이가 미워진다"며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육아전쟁에 뛰어 든 아버지들도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성우 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몸이 피곤한 것은 둘째 문제다. 떼 쓰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마음이 먼저 피곤해진다. 그래서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기도 하고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육아전쟁이 부부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김 씨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주말을 반납 한 채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지만 아내는 혼자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불만을 쏟아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서운한 마음에 아내와 다투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 돌보는 남자들을 향한 주변 시선도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다. 박진우 씨는 "가부장적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아이 핑계를 대면 팔불출로 비쳐진다. 특히 직장에서 애 때문에 일찍 퇴근해야 한다고 말하면 남자가 집에 얽매여서 큰일을 할 수 있겠나라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노부모에게 아이 맡기는 것도 스트레스

'손자 돌보는 낙으로 산다'는 말이 옛말이 되고 있다. 손자 돌보는 일에 인생을 저당 잡히지 않으려는 노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이에 따라 남자들의 육아 부담과 스트레스도 증가하고 있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이우진(41) 씨는 다섯살 된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주변에서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는 둘째 출산 계획을 접은 지 오래됐다. 이 씨는 "장모님이 첫째 아이는 봐주기로 했지만 둘째는 힘에 부친다고 해서 둘째를 낳으면 믿고 맡길 때가 없다. 보모를 구해 둘째를 키우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안심이 되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둘째는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이를 처가에 맡기는 것도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이 씨는 "아이 돌보느라 힘들어 하는 장모님을 볼 때마다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육아 문제로 장모님과 보이지 않는 갈등도 겪고 있다. 장모님은 제가 시간을 더 많이 내서 아이도 돌보고 집안 일도 거들어 주기를 바라는 눈치여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육아 휴직은 '그림의 떡'

현행법에 따르면 만 6세 이하 어린이를 둔 맞벌이 부부는 아내와 남편이 1년씩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육아 휴직을 할 경우 매달 최고 100만원의 육아 휴직급여도 제공된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육아 휴직은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다. '육아 휴직=여성의 몫'이라는 정서가 강해 남자가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 이에 따라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육아 휴직을 신청한 남성근로자는 2003년 104명에서 2004년 181명, 2005년 208명, 2006년 230명, 2007년 310명, 2008년 355명, 2009년 502명, 2010년 819명, 지난해 1천402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는 남성들의 육아 분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남성 육아 휴직자의 증가는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육아 휴직자 가운데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2003년 1.5%, 2004년과 2005년 1.9%, 2006년 1.6%, 2007년 1.4%, 2008년 1.2%, 2009년 1.4%, 2010년과 2011년 1.9%로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2007년 기준 스웨덴 남성의 육아휴직제도 이용률이 20.8%에 달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국내에서 남성의 육아휴직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남자가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처럼 되어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4분기 육아 휴직을 신청한 273명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지역별 분포를 분석한 결과, 서울'경기도가 151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대전시가 16명, 광주시가 15명, 부산시와 인천시가 각각 11명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대구시는 9명으로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남자는 소위 말해 간 큰 직장인으로 분류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심모(33) 씨는 "법적으로 남자도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면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사용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육아 휴직을 신청할 경우 사직까지 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한편 육아를 분담하는 남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남성의무육아휴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안으로 거론 되고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스웨덴식 '파파 쿼터'(Papa Quota)제다. 스웨덴은 남성 육아 휴직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으로 보장한 480일의 육아 휴직 기간 중 60일을 아버지 몫으로 할당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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