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덥다, 더 벗어라" 쿨비즈 열풍

정부發 쿨비즈, 전력대란 겹치자 직장마다 근무복장 "시원하게"

노타이 차림으로 근무하고 있는 대구시청 직원들. 대구시는 지역 정서 등을 고려해 반바지 차림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노타이 차림으로 근무하고 있는 대구시청 직원들. 대구시는 지역 정서 등을 고려해 반바지 차림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서울시가 혹서기인 6~8월을 슈퍼 쿨비즈 기간으로 정함에 따라 이달 1일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 서울시청 공무원들.
서울시가 혹서기인 6~8월을 슈퍼 쿨비즈 기간으로 정함에 따라 이달 1일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 서울시청 공무원들.

"올여름에는 쿨해지세요."

올여름 날씨가 심상치 않다. 때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전력 사정도 여의치 않아 유례없는 전력 대란이 예상된다. 무더운 여름을 슬기롭게 나기 위한 전쟁이 벌써부터 시작됐다. 바로 쿨비즈 열풍이다. 쿨비즈(cool biz)는 쿨(cool)과 비즈니스(business)의 합성어로 반팔 와이셔츠에 노타이 차림을 말한다. 넥타이만 매지 않아도 체감온도를 2℃ 정도 떨어뜨릴 수 있어 쿨비즈는 여름철 드레스 코드로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올해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쿨비즈가 더욱 강화됐다. 쿨비즈에서 한발 더 나간 슈퍼 쿨비즈(super cool biz)가 등장한 것. 상의는 와이셔츠가 아닌 폴로형 셔츠, 하의는 양복바지가 아닌 반바지, 신발은 구두가 아닌 샌들이나 캐주얼화를 착용하는 것이 슈퍼 쿨비즈의 특징이다. 업계도 쿨비즈 열풍에 맞춰 더위 사냥에 나섰다. 기능성 소재로 만든 다양한 쿨비즈 상품을 선보이면서 올여름을 쿨하게 보내려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쿨비즈 첨병은 정부

올여름 쿨비즈 열풍의 진원지는 정부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쿨비즈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 쿨비즈를 확산시키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했으며 일부 국무위원들은 '휘들옷'을 입고 나왔다. 휘들옷은 '휘몰아치는 들판에 부는 시원한 바람 같은 옷'이라는 의미를 가진 순우리말 합성어. 휘들옷은 시원하고 쾌적한 여름철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식경제부가 한국패션산업연구원'대구경북 섬유패션기업들과 손잡고 만든 쿨비즈 의상이다.

정부의 에너지 효율화 정책에 동참하고 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원시는 이달 17일 와이셔츠 대신 티셔츠를 입고 근무하는 '쿨비즈 운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기업들도 쿨비즈 운동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재킷 정책을 도입했으며, 현대기아차그룹도 직원들에게 재킷을 벗고 노타이에 반팔 셔츠를 착용하도록 했다. 또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도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는 쿨비즈 근무를 도입했다. 특히 현대백화점은 백화점 업계 철칙으로 여겨졌던 근무 복장 관행을 깨고 쿨비즈 운동에 동참했다. 업계 처음으로 매장 직원에게 면바지'폴로형 셔츠 등 캐주얼 복장을 허용한 것. 그동안 백화점 업계에서도 쿨비즈 운동이 벌어졌지만 고객들을 직접 응대하는 매장 직원들은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반바지를 허(許)하라

평소 격식보다 실리를 중시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온 박원순 서울시장의 스타일을 반영하듯 서울시는 쿨비즈를 발전시킨 슈퍼 쿨비즈 운동을 벌이고 있다. 혹서기인 6~8월을 '슈퍼 쿨비즈' 기간으로 정해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반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을 수 있도록 한 것.(민원 부서 제외) 이에 따라 시행 첫날인 이달 1일, 서울시청 남산별관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가 근무 복장의 마지노선을 돌파하며 파격적으로 반바지와 샌들을 허용하자 이를 둘러싼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실용적이다'는 찬성론과 '공무원의 근무자세와 품위를 해칠 뿐 아니라 혐오감마저 준다'는 불가론이 대립하고 있는 것. 슈퍼 쿨비즈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공무원들의 반바지 착용은 더운 날씨에 업무 능률을 올릴 뿐만 아니라 경직된 조직문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격식이나 품위보다는 실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지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무원 복장으로 너무 지나쳤다. 쿨비즈만으로도 충분한데 다리털에 발가락까지 드러난 반바지와 샌들은 좀 곤란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서울시가 25개 구청과 산하 출연기관 등을 대상으로 슈퍼 쿨비즈 동참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슈퍼 쿨비즈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슈퍼 쿨비즈는 다른 곳으로 확산되며 올여름 새로운 드레스 코드로 부상하고 있다. 충남도청은 매주 수요일을 '캐주얼 데이'로 정해 반바지에 샌들 차림 출근이 가능하도록 했다. 경기교육청도 야근 때는 반바지와 티셔츠'슬리퍼 착용을 허용하며 슈퍼 쿨비즈 운동에 부분적으로 동참했다. 또 KT&G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반바지와 샌들 차림의 슈퍼 쿨비즈 패션을 권고하는 하절기 복장 자율화를 도입했다.

◆대구 쿨비즈의 현주소

26일 오후 2시 대구시청. 서류를 들고 오가는 남자 직원들은 한결같이 노타이 차림이었다. 민원실과 총무인력과, 자치행정과 등 몇몇 부서를 둘러봐도 남자 직원들은 모두 넥타이를 풀고 반팔 와이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대구시가 지난달 29일부터 노재킷과 노타이를 기본으로 한 쿨비즈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와이셔츠 형태는 다양했다. 한때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여름 복장으로 인식되어 온 흰색 민무늬 와이셔츠 대신 체크'줄무늬 등이 들어간 와이셔츠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색상도 블루'핑크 등으로 한결 밝아졌다.

하지만 면바지를 입은 남자 직원들은 찾기 힘들었다. 대구시가 쿨비즈 복장으로 면바지까지 허용했지만 남자 직원들은 일률적으로 정장 바지에 와이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또 노재킷을 표방했지만 재킷을 입고 출근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오히려 복장 면에서 보면 여자 직원들이 쿨비즈의 취지를 더 잘 살리고 있었다. 통일된 복장 코드를 선보인 남자 직원들에 비해 여자 직원들은 치마, 7부 바지, 청바지 등으로 다양함을 연출했다.

대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혹서의 고장이다. 대구 사람들은 체감을 잘 못하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대구의 무더위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구의 여름 날씨를 감안하면 대구는 쿨비즈 운동을 선도하는 도시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쿨비즈 열풍을 체감하기 힘들다. 보수적인 지역 정서를 반영하듯 슈퍼 쿨비즈는 찾을 수 없으며 쿨비즈도 점잖다. 좋게 표현하면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변화를 싫어한다고 할 수 있다.

대구시는 여름철 복장 간소화를 시행하면서 반바지를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검토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반바지를 착용할 경우 품위 유지가 어렵고 근무기강마저 해이해질 우려가 있으며 지역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반바지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슈퍼 쿨비즈 대신 쿨비즈를 선택한 대구시의 입장은 지역 쿨비즈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시뿐 아니라 쿨비즈 운동을 벌이고 있는 지역 기업들도 보수적인 지역 정서를 감안하면 슈퍼 쿨비즈 도입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무난함이다.

대구백화점은 여름을 맞아 자율복장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리 부서 직원들은 면바지와 폴로형 셔츠 등 캐주얼 차림으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 업계 관례에 따라 매장 직원들은 자율복장근무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동아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달부터 8월 말까지 복장 간소화를 시행하고 있지만 매장 직원들은 대상에서 빠졌다. 현대백화점이 보여 준 파격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셈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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