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밀실 처리' 한·일 군사정보협정 외교 망신

서명 50분 남기고 "체결 연기"…현 정부 임기내 재추진 힘들 듯

정부가 29일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체결을 전격적으로 연기했다. 이날 오후 4시 일본 외무성에서 예정됐던 서명식을 50분 앞두고서였다. '밀실 처리' 논란이 증폭되면서 여론이 악화된 데 따른 것이지만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외교부 조병제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회와 협의를 거친 다음에 추진하는 방향으로 일본과 협의를 마쳤다"며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시작된 것인데 문제 제기가 있다면 당연히 재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요구한 협정 체결의 유예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정부는 국회 상임위가 구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달 9일부터 국회와 협의를 시작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의 7월 방위백서(독도 영유권 주장 포함) 발표와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대권 레이스 등을 고려할 때 현 정부 임기 내에 협정을 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일 양국은 2008년 이전부터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실무선에서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해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공식 추진을 합의했다. 이어 이달 26일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즉석안건으로 협정 체결을 의결했지만 반발 여론에 부딪혀 외교적 망신을 자초하면서 서명을 연기한 것이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은 협정 체결 연기와 관련, 이날 오후 늦게 김성환 장관의 전화를 받고 "한국 측 입장을 이해한다"며 "양측이 긴밀히 협력해 가급적 조기에 협정에 서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새누리당도 겨우 체면치레는 했지만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날 야당의 반발에도 "과거사 문제와 이번 협정은 별개"라는 논평까지 냈다가 급박하게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진영 정책위의장은 국회 브리핑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문제도 있고 또 절차상으로 잘 알려지지도 않은 채 급하게 체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너무 부적절하다"며 화살을 정부 쪽으로 돌렸다.

한편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협정 체결 연기에 대해 "애초부터 잘못된 일이므로 연기가 아니라 완전 철회돼야 한다"며 "정상적 안건 처리방식을 지키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즉석안건으로 전격 의결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국민 기만행위"라고 비판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에 대해 "절차상의 문제로 의도하지 않게 국민에게 심려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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