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을 향한 탐색 속에 자본주의시장의 총아로 각광받아 온 구미 기업 경영자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월가 금융자본에 반기를 든 대중이 길거리로 나섰고,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분노는 각국 선거에서 정책 변화에 대한 요구로 표출되고 있다. 우리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 입법이 논의되고 있으며, 연말 대선에서는 기존의 산업화 패러다임을 대체할 상생'통합의 시대정신이 화두로 대두될 전망이다.
바야흐로 세계가 전환기적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글로벌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국제공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나라의 곳간이 비어 있다. 중국은 글로벌 현안 해결에는 미온적인 채 자국의 실리만 챙기고 있다. G7을 대체해 출범한 G20은 국가 간 견해차이로 이렇다 할 리더십을 찾기 힘들다.
작금의 상황은 1차대전 후 국제질서를 떠받칠 지도국이 없어 대공황과 2차대전을 맞았던 과거를 연상시킨다. 당시 패권국인 영국은 질서를 주도할 의지는 있었지만 능력이 부족했고, 신흥강국 미국은 능력은 있었지만 의지가 부족했다. 현재 유럽의 금융위기도 역내 최대주주격인 독일과 프랑스의 견해차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큰 추세가 바뀌는 전환기에는 기존 리스크 이론이나 분석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기는 어렵다. 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 등 자연재해나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금융'재정 위기는 기업 리스크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키고 있다.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블랙 스완'은 경험에 근거한 지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보여준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경제 중심이 옮겨지고 새로운 경제 질서로 재편되기까지 불안정은 한동안 지속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원칙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위기 관리 차원에서는 어떤 여건에서도 유연하고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이른바 '리스크 인텔리전스(Risk Intelligence) 경영'이 필요하다. 실제로 위험 관리 실패 사례 대부분은 기본을 지키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잘못된 가정과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의존하지만 정작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실패 가능성에는 둔감하다. 사업과 외부환경 간 연결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리스크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한다.
글로벌 기업 듀폰이 오랜 세월 업계 수위를 유지해 온 비결은 끊임없는 혁신 외에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에 있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듀폰은 곳곳에서 뜻밖의 사고에 직면했다. 기술 진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거액의 투자가 들어가는 연구개발은 그 자체로 위험 요인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론이 태동했다. 먼저 방대한 내부자원을 활용해 여러 상황에 적응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불확실성을 관리했다. 다양한 시행착오와 거기서 얻어지는 교훈을 지식경영 시스템에 접목해 재발을 방지했다. 위기에서 실질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대응 역량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듀폰의 사례는 전범으로 평가된다.
리스크 관리에서 가정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전통적인 가정이 백조였다면, 기업에 치명적 위험이나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가정은 블랙 스완이다. 경영환경과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기존 가정을 이해하면서도 이에 대비되는 반대명제를 제시할 수 있어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치밀한 계산하에 리스크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리스크를 제거할 수는 없다. 수용할 리스크는 무엇인지, 이를 통해 무엇을 보상받을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로서는 최근 매물로 나오고 있는 유럽 기업이나 공공 부문에 대한 공격적 인수합병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경제의 불확실성과는 별개로 핵심기술과 시장 확보가 가능한 알짜기업 인수는 큰 기회다. 인수한 기업을 발판으로 유럽시장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남미 시장에 진출하고 자원 확보에도 나설 수 있다. 리스크는 회피해야 할 위험이기도 하지만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리스크에 대한 적극 대처를 통해 전환기 도약의 기반을 다지는 전사적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이 필요한 때다.
이재술/딜로이트안진 총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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