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대구헌법을 아십니까."

"대구시민은 권력과 명예와 부를 동시에 추구하지 않는다!"

'대구헌법' 제8조다. 무슨 말인고 하니, 대구시민에게 적용될 헌법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바로 '대구헌법'이다. 다소 황당하기도,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실현됐으면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대구헌법 제3장 대구시민의 의무 제8조로, 가장 인기 있는 조항이기도 하다. 좋은 것은 골고루 나눠 가지자는 취지다. 권력, 명예, 돈 등 셋 중 하나만 가져도 좋고 행복한데 소수가 이 세 개를 독식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월급과 관련된 8조 1항도 환영할 만하다. '대구시민의 의사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임기 중 시간당 최저임금에 의한 세비만을 개인적 수입으로 하며 초과 지급되는 차액은 대구시에 기탁하고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 대구시민들의 기본권이 실현되는 데 사용한다'고 적고 있다.

대구의 최고 권력자인 국회의원의 권력과 명예와 부를 분리하자는 것으로, 올 2월 대구 한 고교 교사가 스웨덴 국회의원을 예로 들며 제안한 조항이다.

2회에 걸쳐 출마해도 선택을 받지 못한 후보자는 이후 출마를 단념한다는 3항도 눈길을 끈다. 4항은 보궐선거 비용 3배 지급, 5항 재산 환원 등의 정치인들에 대한 구체적인 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21조엔 '병역의무를 질 경우는 9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있고, 제26조엔 '검찰 권력은 대구시민에서 나오며 대구지검장은 대구시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대구헌법은 지켜야 할 강제성이 없다.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 일 없어 만들어낸 장난도 아니다. 다같이 행복한 공동체인 '대구'를 만들자는 거다. 희망을 함께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대구헌법 제헌은 '공동체의 주인 되어보기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민이, 국민이 대구의, 우리나라의 주인이라고 말만 할 뿐 정작 주인이 돼 보지 못하고 있기에 대구헌법을 직접, 그리고 함께 만들면서 진정한 공동체의 주인이 돼 보자는 거다.

대구헌법 제헌 운동은 변호사, (치과)의사, 약사, 교수 등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회원 300여 명으로 구성된 대구전문직단체협의회가 처음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산행 모임에서 '대구가 이대로는 안 되지 않느냐' '희망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대구헌법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최봉태 변호사는 "대구시민이 꿈꾸는 미래상부터 만들어보자며 시작했다"며 "헌법이란 용어를 쓴 것은 지방분권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지역 공동체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 실현하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대구헌법의 특징은 몇몇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작은 소수가 했지만 대구시민이 함께, 직접 만들어야 힘이 있고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구전문직단체협의회 페이스북, 체인지대구 홈페이지 등에 대구헌법 제안방을 만들어놓고 누구나 제안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놨다. 제안과 이유, 실현 목적과 방법 등을 적으면 된다. 새로 제안된 조항들은 시민검증위원회, 만민공동체 등을 거친 뒤 최종 간택한다. 선택되면 제안자의 이름까지 적는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대구헌법 제정 작업은 2014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초안은 꾸준한 업데이트를 거쳐 지난 총선 직전 틀을 갖췄고 2014년 지방선거 전 완성해 후보자들의 공약에 영향을 주는 등 후보 선택의 잣대로 삼을 작정이다. 대구헌법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유권자 운동으로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민족 자주의 거름, 2'28학생운동은 4'19 혁명, 그리고 민주 정신의 시발점이 됐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대구헌법도 행복한 대구, 나아가 통일헌법, 동아시아헌법 제헌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대구헌법이 위력을 떨칠 날이, 그래서 대구가 변할 날이, 세계의 찬사를 받는 '행복한 도시'가 될 날이, 꼭 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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