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충북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에 촉새봉과 십자봉으로 불리는 산이 있다. 높이가 982m이다. 예로부터 촉새봉으로 불렸지만 일제강점기 때 십자봉으로 바뀌었다. 십자매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 그들이 사랑하는 새를 따서 붙인 듯하다. 참새과인 촉새와 십자매는 크기와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한다. 강원과 충청의 도계에 위치해 원주 십자봉, 또는 제천 십자봉으로 불린다. 겨울에는 설경,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이 좋은 산이지만 시원한 계곡산행으로서도 안성맞춤이다. 정상을 기준으로 서북쪽에는 천은사 계곡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덕동계곡, 서쪽엔 운계계곡이 있다.
산행 코스는 크게 두 갈래다. 덕동리를 기준으로 십자봉을 원점회귀하는 가벼운 코스와, 백운지맥과 천등지맥을 연계해 종주하는 장거리 코스로 나눈다. 특히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은 양안치고개에서 시작해 동막봉(595m), 가십자봉(96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전인미답의 숨겨진 코스다.
원주에서 제천으로 연결되는 19번국도(옛 길)의 청원휴게소가 등산 기점이다. 맞은편 송덕비 오른쪽에 등산로가 있다. 인적이 드문 산길에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가 먼저 반긴다. 잡초가 우거진 희미한 길을 따라 능선에 오르면 반대편이 훤히 열린다. 진행할 능선 방면으로 낙엽송이 층층으로 즐비하다. 낮은 산자락 운계사에서 들려오는 불경소리가 은은하다.
완만한 지맥 능선을 따르다 보니 약간 높은 둔덕같은 곳에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등산을 시작한 청운휴게소 방향으로 떨어지니 반드시 오른쪽 내리막길로 가야 한다. 40여 분 후 작은 갈림길이 나타나면 왼쪽 길을 택하면 된다. 백운지맥을 종주하는 팀이 많지 않아 선명한 등산로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세월에 꺾인 나무들과 지난가을 떨어져 퇴색한 떡갈나무 잎들이 등산로 주변에 수북하다. 능선 왼쪽에는 철조망에 그물망이 쳐져 있다. 장뇌삼과 약초를 재배함에 따라 '출입금지' 경고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잡풀이 수북한 자그마한 헬기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동막봉이다.
◆스릴 만끽 암봉
동막봉은 지도상 위치한 곳에 있지 않다. 지도상에는 운계리 산촌마을에서 올라오는 지능선을 만나고 조금 더 진행하는 곳에 표기돼 있다. 동막봉을 통과해 150여 m 정도 더 내려서야 산촌에서 올라오는 지능선이 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가십자봉까지는 군데군데 바위능선과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주 빼어나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더니 위험함을 경고하듯 곳곳에 밧줄이 매어져 있다. 세 번째 만나는 암봉이 스릴 있는 암릉 길의 최고 하이라이트. 오른쪽은 공포를 느낄 정도로 아주 높은 수직 절벽이다. 몸통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만치 비좁은 트래버스 구간이다. 지나서 뒤돌아보니 암봉은 마치 돌진하는 거대한 코뿔소를 닮았다.
네 번째 암봉은 해발 795m인 만경대. 천연의 성벽요새 같다. 우듬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뿐 사방이 고요해 비로소 속세를 떠나온 느낌이다. 보이는 것 모두가 청량해 선경(신선이 산다는 곳)이 따로 없다. 권총을 닮은 신기한 권총바위도 보인다.
천은사에서 올라오는 안부 갈림길을 통과해 오르막을 오르니 가십자봉이다. 누가 가져왔는지 돌무더기가 있다. 탑도 아닌 어정쩡한 모양으로 흩어져 쌓였는데 나무막대기 하나 덜렁 꽂혀 있다. 백운지맥과 천등지맥이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십자봉에서부터 자연성능 같던 능선이 포근한 육산으로 탈바꿈한다. 그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는 설이 뒷받침 될 만큼 숲이 무성하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의 신록이 햇볕 한 점 허락하지 않는다.
◆원주시·제천시, 2개의 정상석
'원덕동 1.3m, 십자봉 0.5m'라 적혀진 이정표를 통과해 비스듬한 길을 오르니 십자봉 정상이다. 정상에는 원주시와 제천시에서 각각 세운 정상석이 있다. 그런데 해발 높이가 다르게 표기돼 있다. 그래도 조망은 시원스럽다. 동북쪽으로 백운산 주능선과 그 너머로 치악산 줄기가 완연하고, 동남쪽으로는 삼봉산이 보인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시루봉과 옥녀봉이, 서쪽에는 미륵산이 자리하고 있다.
하산길은 삼봉산까지 능선으로 1시간 30분, 하산까지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갈림길이 많아 독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운계계곡은 지도에는 길이 선명하게 표기돼 있지만 믿을 게 못 된다. 등산로 위에 가시덤불이 우거져 등산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좋은 하산로는 덕동계곡이다. 표지기도 많이 붙어 있고 이정표가 잘 설치돼 있다. 덕동리 마을회관까지는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덕동계곡은 북쪽으로 백운산, 서쪽으로 십자봉, 남쪽으로 삼봉산 줄기가 ㄷ자형으로 에워싸고 있다. 계곡의 들목은 백운산 남릉과 삼봉산 동릉이 덕동계곡 주류를 이루는 원서천. 물가에서 서로 마주쳐 병목형상을 이루는 구수애삼거리다. 구수애는 백운산과 십자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협곡을 따라 아홉 구비로 흘러오는 곳이라는 뜻. 2002년 '충북의 자연명소'로 지정되었다.
청원휴게소에 등산을 시작해 동막봉, 만경대, 가십자봉, 십자봉 정상을 오르는데 3시간 정도, 덕동리로 하산 하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소요되는 등산거리는 약 9.5㎞다. 참고로 삼봉산까지 연계하면 걷는 시간만 6시간 정도다.
산행을 떠나기에 앞서 코스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선호하는 덕동리를 기점으로 하는 원점회귀는 초보 등산객들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산객들에게는 다소 흥미가 떨어진다. 산행시간도 짧은데다 계곡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서다. 거기에 비하면 동막봉에서 가십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빼어나다. 우거진 송림에 아기자기한 능선은 어느 곳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산의 진가는 어느 봉우리를 올랐느냐가 아니라 어느 코스로 올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태고적인 자연미와 분재와같은 노송들이 군락을 이룬 동막봉, 십자봉으로 초대하고픈 이유이기도 하다.
글·사진 양숙이(수필가) yanggibi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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