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돼지가 리어카를 타고 신부 집에 갔다. 숫총각인데다 초혼 '첫날 낮'이어서 부끄럼이 앞섰지만 응원하는 이웃어른 덕에 일을 무사히 치렀다. 리어카를 타고 돼지우리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리따운 신부를 다시 한 번 만날 수는 없을까."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던 돼지죽도 먹기 싫었다. 오로지 신부 생각뿐이었다.
아침이 되어 중대 결심을 했다. 판자를 머리로 들이받고 밖으로 나와 어제 타고 갔던 리어카에 올라타고 앉아 있었다. 주인이 나오더니 "이노무 돼지 새끼가, 야!" 하면서 지겟작대기로 두들겨 패 우리 속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돼지는 너무 슬펐다. 인간 세상에는 제수씨를 넘보던 인간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중들이 목탁을 들고 룸살롱을 드나들며 성매매에 나서는데, 돼지인 나는 사랑 찾아 나섰다가 몽둥이 찜질만 당했으니 이건 너무 억울해. 돼지는 꿀꿀이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를 돼지가 부르고 있었다.
◆돼지의 숫자 세기
아기 돼지 12마리가 소풍을 갔다. 시냇물을 건넌 다음 큰형이 세어보아도 11마리였고 둘째가 세어도 역시 11마리뿐이었다. 이솝은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을 챙기지 못한 우둔함을 탓하기 위해 이런 우화를 썼을 것이다. 요즘 정치계와 공직 사회는 나쁜 일이 터지면 슬그머니 발을 빼고 좋은 일에는 자기를 추천하는 세태로 바뀌고 말았다. 정치꾼 12명이 해외관광에 나서면 가이드는 열도 됐다가 아홉도 됐다가 하는 숫자 세기가 어려웠을 게다.
◆식당 개업
닭과 돼지가 모여 식당을 열기로 합의했다. 닭 대장이 식당 이름을 '애그 앤 햄'으로 하자고 우겼다. 돼지 대장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어 "그건 안 될 말이야" 하고 반대했다. 그래도 닭이 승복을 하지 않자 돼지 대장은 동물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지만 패소했다. 이유는 '덩치 큰 놈이 참으라'는 것이었다. 불공정 거래를 일삼는 대기업 편을 들어 주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부처와 돼지
태조 이성계가 사부인 무학대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사님 얼굴이 돼지같이 보입니다." "허허, 주상께서는 부처님같이 보이십니다." "어찌 그렇게 대답하십니까."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는 법이지요." 이 문답에서 태조는 참담하게 패했지만 무학대사가 완승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물상들은 부처의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무학은 돼지를 부처로 보지 않고 돼지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돼지들은 하도 기가 막혀 "세상에 믿을 ×은 하나도 없네"라며 탄식했다.
◆돼지의 변신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는 '돼지의 변신'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중략)/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시인은 작금의 정치 현실에 예리한 언어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그녀는 "내가 비판한 '돼지'는 좌파 지식인만은 아니다. 좌우 진보 보수를 망라해 말로 대중을 속이는 뻔뻔한 무리를 '돼지'와 '여우'로 풍자했다"고 말했다. 이 시를 읽은 돼지들은 네 개의 족발로 박수를 쳤다. '짝짝짝'.
◆돼지 머릿살 구이 식당
돼지 머릿살을 발라 숯불구이를 하는 식당엘 가봤다. 구미시 산동면 산동우체국 맞은편에 있는 산동식당(054-471-3067)이다. 살아생전에는 업신여김과 숱한 괄시와 천대 속에 살아왔던 돼지들의 다비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열반의식을 집전하는 승려도 독경과 목탁소리도 없었다. 이승에서 너무 고된 삶을 살아 그런지 몰라도 숯불에 올라앉아 있어도 눈물(기름)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섯 도반들이 1만8천원짜리(600g) 접시 4개를 비워냈다. 가는 영혼을 위해 무슨 불경을 외워야 할지 몰라 '나무아미타불 타불'만 읊조렸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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