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끝-道界마을을 찾아서] <1>울진 고포 마을-고포 미역과의 전쟁

미역이 원수… 손바닥만 한 마을 50년째 두둥강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고포 마을\'. 마을 중앙 소도로를 중심으로 왼쪽이 삼척 월천2리이고 오른쪽이 울진 나곡6리이다.
마을 주민들이 조선시대 때 궁중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특산물로 꼽히는
마을 주민들이 조선시대 때 궁중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특산물로 꼽히는 '고포 미역'의 건조작업을 하고 있다.

전국 최대 면적을 가진 경상북도는 동으로 바닷가, 서로 충북과 전북, 남으로 경남과 울산, 북으로 강원도와 접해 있고 북에서 남으로 낙동강이 가로지르고 있다. 경북도는 강과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고대 가야문화와 신라천년의 불교문화, 선비정신의 유교문화 등 찬란한 문화유산과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314년 고려 충숙왕이 '경상도'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지 700년을 앞둔 시점에서 경북도의 지리적 경계와 경계마을에 얽힌 스토리, 문화역사적 배경 등을 살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고포 마을, 고포 미역과의 전쟁

조선시대 왕 진상품으로 궁중에서만 맛볼 수 있을 정도로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히는 특산물이 '고포(姑浦) 미역'이다. 이 미역 채취권를 둘러싼 분쟁으로 40가구가 거주하는 '고포 마을'은 경상북도(울진군 북면 나곡6리)와 강원도(삼척시 원덕읍 월천2리)로 두 동강이 나 있다. 고포마을 주민들은 폭 2m도 채 되지 않는 마을 소도로 중간을 경계로 각각 20가구씩 남(경북도)과 북(강원도)으로 갈라져 살고 있다. 정이 넘치고 인심이 넉넉한 농촌마을의 전형적인 '이웃사촌' 모습과 달리 지방자치단체 간 '고포 미역과의 전쟁' 때문인지 양쪽 주민들 간에 거리감이 있었다.

울진원전과 울진군 농어촌폐기물 종합처리장이 바로 인근에 위치해 각종 재정적인 지원으로 울진 나곡6리 쪽은 비교적 풍요로운 반면 삼척 쪽은 '한 동네인데 솔직히 배가 아프다'고 다소 불만이다. 마을 전체를 밝히는 10여 개의 가로등이 울진 쪽에만 설치돼 있고, 가로등 운영비도 울진이 전액 부담하고 있는 현실이 두 지역의 차별성을 대변한다. 삼척 쪽은 허름한 시설의 경로당인 반면 울진은 2층 규모의 최신식 마을동회관에 경로당이 입주해 있다.

마을 경계 표시도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삼척 쪽 주택은 '고포 월천길 ○호'로 표시된 반면 울진 주택은 '고포길 ○호'로 표식이 다르다. 삼척 쪽은 강원도지사와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장 명의로 '2005년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된 팻말이 있고, 동해 해양경찰서 고포선박출입항대행 신고서를 작성하는 가정집도 있다.

양쪽 주민들은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 두 동강 나는 바람에 주민 화합이 되지 않고,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예산낭비가 심하냐. 빨리 어떤 식으로든 합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사연

각종 기록에 따르면 '고포 마을'은 조선 태조 때부터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개천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나뉘었다. 울진군이 강원도에 속했던 1962년 이전까지는 이 같은 경계선에 대한 이의제기는 없었다. 그러나 울진군이 경북도로 편입된 1962년 11월 이 경계선은 강원도와 경북도를 나누는 경계가 됐고, 남쪽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경북도민이 됐다.

마을 하천을 가로질러 도 간 경계가 획정돼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1994년 당시 내무부는 도간 경계 조정 대상지역으로 분류, 고포마을의 '남쪽과 북쪽' 주민 30가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경북도와 강원도의 내무과장 입회 아래 의견조사가 진행돼 23가구는 울진군 편입에 동의한 반면 삼척 편입은 6가구이고 무효 1가구로 나타났다. 곧바로 내무부 주도로 '고포 마을'의 울진군 편입작업이 추진됐으나 '고포 미역' 채취권을 둘러싼 어업권 갈등으로 초반부터 틀어졌다.

강원도는 월천2리 주민들의 주소득원인 '고포 미역'을 채취하는 '1종 공동어장' 어업권을 경북도에 넘기지 않는 대신에 주민들 '몸'만 울진으로 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경북도와 울진군은 당연히 고포 미역 채취권도 넘어와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1종 공동어장인 '고포 미역 바위' 또는 '고포 미역 암초'의 소유권 분쟁이 벌어진 것. 강원도는 정치망과 호망(작은 어장) 운영권도 경북도로 넘길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결국 경북도와 강원도는 고품질로 다른 지역의 미역보다 3배 이상 높은 가격을 받는 '고포 미역'의 어업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으나 행정경계 조정은 '없던 일'로 막을 내렸다.

울진 쪽의 임명호(67) 씨는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거지도 밥그릇이 있어야 동냥을 다니지 않느냐. 밥그릇도 없이 어떻게 동냥을 가느냐는 분위기가 퍼질 정도로 당연히 고포 미역 채취권도 가져와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월촌2리 주민들도 고포 미역 채취권을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여겼으나 강원도의 극한 반발로 편입이 무산되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고 임 씨는 전했다.

도간 경계선이 된 개천은 복개돼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 500m의 소도로로 포장됐으며, 울진군 예산으로 350m를 개설했고 나머지 구간 공사비는 삼척시가 부담했다.

◆고소득원 '고포 미역'

마을 주민들이 공동 채취해 수익도 공동 분배하는 고포 미역은 이 마을의 '효자 특산물'로 고소득을 안겨준다. 나곡6리 주민들은 지난해 2억원의 매출을 올려 한 가구당 640만원씩 분배됐고 월천2리 주민들도 가구당 400만원씩의 수익이 발생했다. 울진 쪽 고포 미역은 최고 특산물로 지정돼 울진군에 전량 납품되고 군이 판매까지 담당하는 반면 삼척의 고포 미역은 특산물로 지정도 되지 않고 판로는 주민들이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포 미역은 수심이 얕은 바위에서 햇빛을 많이 받고 자라 국을 끓이면 푸른 빛이 되살아나고 부드럽고 향기롭다. 고포 마을의 조류는 빨라서 양질의 돌미역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미역은 줄기나 미역꾸디기(미역의 머리 부분)를 잘라내지만 고포 미역은 잘라내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좋은 미역이라도 건조를 잘못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마을 주민들은 건조한 하늬바람이 부는 날을 택해 미역을 말려 검고 윤기 있는 상품을 출하한다.

◆서먹한 '이웃사촌'

울진군 농어촌폐기물 종합처리장과 소각장이 준공된 2004년 이후 이들 시설 영향권에 있는 나곡6리와 월천2리 주민들은 지원금으로 허름한 촌집을 전원주택으로 모두 증개축했다. 전면적인 주거개선사업으로 각 가정마다 버젓한 한옥을 구비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60, 70대인 마을 주민들은 주민소득사업의 일환으로 폐기물 처리장에서 교대로 근무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2009년 당시 울진 쪽 어촌계장과 월천2리 이장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삼척 쪽 주민들은 졸지에 폐기물처리장 근무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월천2리 황동식(64)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처리장 근무를 하지 마라'는 통보를 받고 차별대우에 충격을 받았으며 아직도 서운한 감정이 쌓여 있다"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다같이 보는 동네 사람들인데 울진 사람들은 일을 나가고 우리는 하릴없이 집에서 놀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때부터 양쪽 주민들 간에는 갈등과 불신이 깊어졌다. 월천2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물은 질이 좋은 반면 나곡6리 지하수는 수질이 나빠 식수로 불가능하다. 나곡6리 주민들은 '같이 좀 이용하자'고 제의했으나 반대에 직면했다. 급기야 울진 쪽에서는 2년 전부터 마을에 공동정수기를 설치해 식수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마을에서 평생을 함께 살고 있는데다 형제간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생활하기도 해 극한 반목과 대결로 치닫지는 않는다. 형제간인 김대수(87'삼척) 씨와 김수인(78'울진) 씨는 각각 강원도와 경북도로 나뉘어 마을 안길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다. 각자의 경로당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서로 연락할 일이 있으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시외전화 통화보다는 몸을 움직여 대면한다.

울진'강병서기자 kb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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