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은 파티에서 세계의 미술관들 중 으뜸이라 하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앙리 로이레트 프레지던트를 만날 수 있었다. 프레지던트란 관장과 구분되는 직위로 관장이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 프로그램 업무 등 흔히 미술관의 일반적 업무를 책임진다면 프레지던트는 미술관의 미래 비전을 설계하고 예산 확보와 대외 협력 및 홍보 등 보다 더 전략적이고 대외적인 다른 차원의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루브르 전시를 기회로 한국을 방문했다. 오늘날의 미술관에 대한 간결하고도 압축된 그의 인사말이 흥미로워 소개하고자 한다. 앙리 로이레트(이하 직위 생략)는 "미술관은 이제 생필품이다"고 정의했다. 생활필수품이라 하면 삶을 영위시켜 주는 기본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서양 모더니즘 미술이 막 태동하던 시기인 1850년대 인상주의 미술에 반감을 갖고 있던 샤를르 보들레르가 당시의 예술을 실용성의 관점에서 신랄하게 폄훼하면서 우리에게 실용적인 곳은 화장실이며, 예술이란 효용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앙리 로이레트는 예술품이 실용품이라고 단언한다. 즉 가장 효율적인 소비재라는 의미로서 보들레르와 전통적인 예술의 관점에 대해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을 한 것이다.
먼저 세계의 미술관인 루브르를 생각해보자. 물론 루브르는 실용적인 작품들을 모아 놓은 수집장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가장 비실용적인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1793년 이래로 이미 '세계의 미술관'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온 루브르 박물관은 구입과 약탈 등 적법하면서도 편법적인 수단을 모두 동원해 프랑스를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도 세계의 관람객들은 루브르를 방문할 때마다 그 약탈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릴지 모른다. 아메리카, 이집트, 인도, 중국을 포함한 전체 지구촌 문화유산과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라스의 승리의 여신' 등 세계적 문화 아이콘이 되어버린 특별한 예술 작품들로 가득한 수장고는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
루브르는 긍정과 부정, 합리와 비합리가 함께 공존하는 모순적인 장소다. 이와 같이 루브르는 역설의 미학을 대변한다. 이것은 바로 예술 자체의 미학이면서 경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음의 '예술의 역설'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미술품을 생필품으로 단언한 우리 손님의 주장도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세상에는 오랜 전통과 관습을 통해 확연히 구분되는 두 개의 질서가 존재한다. 하나는 세속적 경제 질서로서 효율성의 법칙을 따르며, 여기서 아름답거나 정신적인 것, 장식적인 것은 무의미하고 부차적이며 고비용적이다. 오히려 간결하고 합리적이며 차가울수록 좋다.
이러한 일상의 질서 이면에는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단단히 지지해주는 예술적 질서가 존재한다. 이것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일수록 큰 가치를 지닌다. 특히 아름다운 것은 비효율적인 것이고, 따라서 비효율적인 것은 아름다운 것과 동격이 된다. 사랑, 정신적인 것, 예술, 장식적인 것이 동일한 하나의 계열 속에서 만나게 된다.
예술 세계에 불변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은 영원히 그 역설적 특성을 포기할 수 없다는 역설이다. 언제나 고정되지 않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므로 예술은 역설적이고 신선하며 생의 필수품이 된다. 고착되고 굳어버린 것은 그 생명력을 잃어버려 예술이 아니다.
인생은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으로 구성된다. 비합리적인 것은 논리적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우리 생의 필수적 요소이고, 인간을 동물과 다르고 신과도 다르게, 진정 인간답고 숭고하게 만들어주는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생필품'이고, 언제나 '되어짐'의 대명사이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한 여유롭고 즐거운 자리였다. 초여름 밤 더위를 식혀주는 차가운 샴페인과 화이트 와인, 묵은 냄새가 나는 서너 가지 프랑스제 치즈, 버터를 바른 바게트, 간단한 요기를 위한 샐러드와 꼬치요리,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품은 작은 갤러리 같은 파티장에서 음식과 예술을 적당히 즐기고 소비하며 보낸 인상적인 저녁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일상의 생필품' 예술이다.
이수균/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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