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과학으로 둔갑한 사이비과학에 '메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노태복 옮김/ 부키 펴냄

최근 150년 전 처음 발견된 화석 하나가 교육계를 뜨겁게 달궜다. 독일 바이에른에서 발견됐으며 공룡과 비슷하지만 이빨이 난 부리가 있고, 앞다리에는 깃털이 달린 화석. 새도 아니고 공룡도 아닌 '시조새'다. 시조새 화석은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근거로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렸다.

이 시조새가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진화론을 비판하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시조새와 말 등 진화론의 논거가 되던 내용들을 삭제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교과부가 이 의견을 출판사에 전달한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국이 창조론자들에게 항복했다"며 논란에 불씨를 지폈다. 결국 교과부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9월 말까지 관련 지침을 전달하겠다고 입장을 바꿨고, 교진추도 '오류 삭제'에서 '논란 내용 병기'로 한 발 물러섰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가장 뜨거운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1925년부터 진화론을 둘러싼 법적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02년부터 3년간 이어졌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도버시의 소송이다. 도버시 교육청장이던 엘런 본셀이 학교에 창조론 교육을 추진하면서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지적 설계론(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적설계론이 가정하는 초자연적 인과성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 가능한 이론의 수립'이라는 과학의 근본 규칙에 어긋난다"는 게 근거였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을 가려내는 책이다. 창조론에 대한 열렬한 비판가이자 과학 교육의 옹호자인 저자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 거의 과학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설명한다. 또 언론과 대중지식인, 정치인, 과학에 대한 맹신이 과학에 대한 오해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과학의 공통점은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수집한 실증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 이론을 도출한다는 점이다. '거의 과학'(almost science)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검증된 적이 없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과학이라고 볼 수 없다. 다중 우주이론이나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SETI), 진화심리학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설은 1960년부터 수억달러와 수백만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사이비과학은 검증은커녕 오류투성이인 주장이다. 2008년 감비아의 야햐 자메 대통령은 어느 날 갑자기 에이즈(AIDS) 치료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치료법도 간단하다. 크림을 한 번 문지르고 얼굴에 어떤 약을 한 번 뿌리고 탁한 액체를 한 번 마시면 된다. 놀랍게도 이 치료법은 감비아 보건부의 승인까지 받았다.

저자는 '지적설계론'(창조론)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낸다. 지적설계론은 어떤 지적인 존재가 세상을 계획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생명이 복잡하게 작동하는 점을 감안하면 돌연변이나 자연적인 진화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반박한다. 이 때문에 애당초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다. 지적설계자가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신념'이지 '과학'이 아닌 것과 같다. 사후 세계를 다녀온 사람도 없을뿐더러 행여 누군가 죽었다 살아났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개인적인 체험일 뿐 사후 세계가 어떠하다고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할 수 있으며 이론상 허점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보완돼 왔다. 하지만 창조론은 이론에 대한 객관적인 증명도, 보완도, 반박도 불가능하다.

이 책의 원제는 '난센스 온 스틸츠(Nonsense on stilts), 죽마(竹馬)에 올라탄 헛소리'라는 뜻이다. 488쪽. 2만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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