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실"의 '찔레꽃'
#오래 전부터 기회가 된다면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악기라고는 하모니카를 겨우 소리 내는 것에 그치는 실력이지만 음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내내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세 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매일처럼 일을 나가야 했다. 푸른 겨울 새벽, 고단한 어머니의 단잠을 깨우던 작은 라디오는 어머니에게는 자명종이 되기도 했지만 일 나간 어머니와 누나들을 기다리는 내내, 어린 소년의 곁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 음악은 때로는 클래식이었고 때로는 가요였으며 또 때로는 째즈와 팝이었다. 가난이 주는 갈증에 목말라 하던 어린 날, 그 작은 라디오가 없었더라면 그 긴 시간들은 얼마나 적막하고 황폐했을까? 어쩌면 젊은 날, 세상을 구하겠노라 소리쳤던 열정과 신념도, 그나마 지금까지 사람에 대한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도 지난 시간을 함께 해 온 소리 같은 것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음악 풍경을 쓰고 싶었다. 전공자가 아닌 탓에 음악을 해석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어쩌면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것이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음악을 이해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라 믿는다. 예술에 대한 해석의 몫이 누구의 것인가를 밝히는 것 자체가 그것을 더 어렵게 하고 더 멀게 한다는 생각이 이런 글을 쓰는 구차한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쭙잖게 고가의 오디오와 많은 양의 시디, 그리고 엘피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이들은 "어떤 음악을 가장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주저 없이 "이연실의 '찔레꽃'이요"라고 대답하면 마치 그들은 전혀 다른 대답을 기다렸다가 무엇엔가 얻어맞은 표정을 짓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지고 있는 음반의 대부분이 클래식이면서 고가의 오디오로 즐겨 듣는 음악이 기껏 흘러간 가요라니 어떤 이들은 실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의심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아마 질문을 던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흐의 엄숙함이나 모차르트의 상쾌함, 아니면 베토벤의 장중함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이국의 째즈나 팝 정도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주는 감동이 어찌 클래식이나 이국의 음악에만 있을까 싶다. 그 어떤 음악이라도 이야기를 가지게 마련이고 그래서 의미를 지니고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과연 음악 애호가들에게 미안한 일일까?
사실 이연실의 '찔레꽃'은 각별하다. 이연실은 '새색시 시집가네'와 '목로주점' 등을 불러 그 이름이 알려졌지만 '찔레꽃'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1930년 '신 소년'에 발표한 이원수의 동시 찔레꽃을 바탕으로 이연실이 가사를 쓰고 박태선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 '찔레꽃'은 특히 최근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불렀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이연실의 노래만큼 절절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아무런 가식도 없는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줄 알았던 그 시대의 몇 안 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긴 그림자를 만들 무렵, 그녀가 만드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그야말로 가슴을 찌르고 남는다. 오로지 자신 만을 위해 세 남매와 아내를 버렸던 아버지, 못난 아들의 장성한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어머니, 하지만 그를 40십여 년 만에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오랜 기다림과 원망이 병이 되어 이미 정신을 놓고 있었다. 하나 뿐인 못난 아들을 위해 두 딸에게마저 그토록 가혹했던 어머니는 기다리던 아버지를 끝내 알아보지 못하고 외면하셨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 회식 자리에서 찔레꽃을 부르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른 새벽, 문득 잠에서 깨면 이제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 홀로 남아 마냥 아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중략)
봄이면 하얀 꽃을 피우는 찔레꽃이 용서의 꽃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를 우리 시대 어머니들과 누이들에게 바친다.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