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득렬의 서양고전 이야기] 300년간 그리스 젊은이 교과서 역할

신득렬의 서양고전 이야기

이번 주부터 동'서양 고전을 알기 쉽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고전이야기' 코너가 신설됩니다. 서양 고전은 신득렬 파이데이아 아카데미 원장이, 동양 고전은 이동희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가 맡아 집필합니다. -편집자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는 기원전 8세기에 나온 초등학생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독하는 책이다. 이 책의 국역판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천병희 교수가 그리스어에서 직역한 '일리아스'(2007, 숲 출판사)가 가장 널리 읽히고 있다.

문학과 역사가 혼합된 이 책은 3천200여 년 전에 일어난 트로이아 전쟁의 한 부분을 서사시로 완성한 것이다. 호메로스는 4세기 동안 구전돼 오던 것을 책으로 저술했다. 이 책에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아 연합군이 헬레네라는 한 여인을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돼 있지만, 흑해 주변의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곡물수송의 요충지에 있는 트로이아 지역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위대한 장군들도 있고 평범한 병사들도 있다. 특이하게도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명기되어 있다. 이들은 저마다 탁월한 덕목들을 보여준다. 등장하는 인물들 중 아킬레우스는 누구와 견줄 수 없는 용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전우 파크로클로스 사이에 전개되는 아름다운 우정도 보여준다. 오디세우스는 놀라운 인내심과 지혜를 보여주고, 필로스의 노왕 네스토르는 노쇠하여 전투에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장군들의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트로이아의 헥토르는 패장이 되었지만 아름다운 효심, 형제애, 조국애를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고대 그리스 7현이나 소피스트들이 출현할 때까지 근 300년 동안 이 책은 그리스 젊은이들의 교과서 역할을 담당하였다.

1만5천693행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시의 절반이 연설문으로 되어 있다. 장군들과 병사들은 전투를 하기 전에 자신들이 왜 싸우러 왔는지, 왜 이겨야 하는지에 대해 연설을 한다. 표면적으로는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헥토르 등이 주요인물로 등장하지만 비평가들은 대체로 네스토르가 호메릭 맨(Homeric man)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호메로스의 이상적인 인간상 즉 '연설도 잘 하고 행동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원고 없이도 자신의 의견과 신념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호메로스의 문장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전쟁장면을 실제처럼 그려보도록 한다. 이렇게 그려진 장면들은 독자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각인되어 평생에 걸쳐 작동하고 다시 이 책을 읽도록 만든다. 여러 번 읽으면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덕목들이 내재화될 것이다.

신득렬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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