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김여환 지음/청림출판 펴냄
닷새 동안 네 곳의 장례식장을 돌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은 약속이나 한 듯 담담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갑작스레 이별한 딸의 눈빛도,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는 아들의 입가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에 따르면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고 한다. 죽음과 맞닿은 유족들의 단계는 어디쯤이었을까.
5년 동안 800여 명의 임종을 선고한 의사가 있다. 아직도 그녀는 누군가의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 대신 자신의 마지막을 상상하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의 근원은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인 평온관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인생의 마지막 '여관'인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암 환자들이 소중한 삶을 어떻게 이어가는지, 그들이 어떻게 마지막 순간과 마주했는지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한 번만 오는 '첫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이다. 저자는 환자들의 '죽음'보다는 '삶의 순간'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수동적으로 '살아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내 인생은 죽 쑤는 인생이었다"는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정신분열증 어머니 아래에서 결핍과 상처투성이였던 어린 시절과 서른아홉에 시작한 늦깎이 수련의 생활. 일과 가정이 모두 삐걱댔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과 '죽어감'을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욕심 속에 고군분투하던 삶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한다.
말기암 환자들에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통증이다. '아기 낳는 고통'에 맞먹는 통증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마지막 삶의 빛을 바라보는 그들이 비참하고 슬픈 것은 아니다. 암세포가 혀를 짓눌러 음식을 씹을 수 없고, 두 눈이 멀고, 걷기조차 힘들지만 자신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들으며 행복해하는 경혜 씨도 있고, 암세포로 얼굴의 절반이 사라지고 끔찍한 통증을 겪으면서도 자식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 자살할 수 없다는 동재 아저씨도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병동에서 봉사하며 지낸 종국 아저씨, 다운증후군인 일곱 살 딸아이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은 윤하 씨도 있다.
저자는 "죽음을 보면 삶의 시작이 보인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지막을 응시하면 들쭉날쭉하던 삶에 일관성이 생기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마지막을 즐기는지 알게 됐다. 축제의 마지막에 하이라이트가 있는 것처럼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매일신문에 칼럼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를 격주로 연재 중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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