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나에게 있어 숙제는 이미 축제다

하고 싶은 말 다 해버린 어제가 쓰리다/ 줄곧 평지만 보일 때 다리가 가장 아팠다/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김경미의 '첫눈' 중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한 적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말이 말을 잡아먹는다. 말이 말을 잡아먹으면서 가슴 한쪽은 늘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뱉어내지 못한 마음들이 속에서 소용돌이를 쳤다. 그게 어른들이 사는 방법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번은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다. 말이 말을 먹지 못하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러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더욱 쓰렸다. 내 말로 인해 누군가가 아플 거라는 생각에 더욱 쓰렸다.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지만 생각은 내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늘 거기에 머문다. 말은 언제나 아프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아는 왔을까? 웃기는 소리다. 사실 난 하고 싶은 것을 거의 하지 못하고 살았다. 언제나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한 삶을 걸었고 나는 그것을 최선이라 치부했다. 뱀의 머리 위를 걷듯 살고 싶었지만 언제나 낙엽 밟듯 시간을 견뎠다. 선한 눈빛이 가장 깊은 것인 줄은 알았지만 자주 화를 내고 울기도 했다.

그러면 내가 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자 나 스스로가 무척이나 난감해한다. 구체적으로 그 하지 못한 일을 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은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이고 그건 내 몫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나에게 그저 내준 것이 정말 많았다. 그런 삶이 고맙다.

작년 이맘때, 내가 걸어갈 정책의 중심을 '말하기'듣기'쓰기'읽기의 통합교육을 통한 미래 인재 양성'이라고 컴퓨터에 적었다. 최근 유행하는 조어 방법으로 표현하여 'RAW-D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지었다. 물론 'RAW-D'는 'Reading, Arguing, Writing, Dreaming'의 줄임말이다. 독서와 토론,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꿈으로 다가가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R, W, D' 교육에 'A' 교육을 첨가했다. 나아가 'RAW'는 '날것의'라는 의미를 지닌다. 말 그대로 '날것의' 교육을 하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출발한 것이 '디베이트 중심도시 대구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읽고 쓰는 정책도 말이 많았지만 말하기 교육은 더했다. 모든 정책이 지니는 양면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특히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듣는 것은 현장에서 떠난 지가 얼마 되지 않는 나에게는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다. 내 속에서는 매일 당위와 실제가 다투었다.

이제 7월 21일이 되면 10개월 정도 힘겹게 걸어온 대구 말하기 교육의 중간 점검이 이루어진다. '2012 가족사랑 디베이트 어울마당'이 그것이다. 300명의 학생이 300명의 학부모와 함께 '우리 시대의 가족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디베이트와 원탁토론을 결합하여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소통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자가 하나씩 모여들고 디베이트 교사지원단을 중심으로 매주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이제 조금은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듯하다. 스스로 평가하기가 부끄럽지만 이번 행사는 분명 아름답다. '소통'과 '감동'을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교사지원단 선생님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는 행복을 되새겼다.

삶은 숙제일까? 아니면 축제일까? 우연히 책에서 만난 이 글귀가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사실 삶은 나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숙제가 되었다가, 축제가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 안다. 숙제와 축제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로 인해 숙제와 축제는 이미 이음동의어이다. 축제 같은 숙제일 뿐이다. 그들이 고맙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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