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북성로 스토리

1907년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 박중양과 일본 거류민회는 대구읍성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신작로를 냈다. 대구읍성이 돌담을 쌓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왕조국가(조선)를 상징한다면, 신작로(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는 외부로 뻗어가려는 제국주의 세력(일본)을 상징한다.

특히 북성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60년대까지 상업, 공업, 유흥업, 문화의 중심이었다. 이 거리에 위치해 있던 미나카이 백화점(현재의 대우 주차장 자리)은 대구 본점을 시작으로,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본 도쿄에 이르기까지 18개 지점을 거느린 백화점 그룹이었다. 1940년 당시 종업원 4천 명, 연 매출 1억 엔의 공룡 기업이었다.

북성로의 일본인은 뻗어가는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고, 식민지 한국인은 그 서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둥댔다. 대표적인 예가 미나카이 백화점과 제화점이다. 당시 한국인은 제화점에 취직해서 기술자들의 발 씻을 물까지 대령하면서 3년 무보수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자기 재봉틀이라도 하나 장만하면 온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아직도 북성로 일대에 구멍가게 같은 제화점이 남아 있는데, 그 출발은 '식민지 한국인의 몸부림'이었다.

대구의 근대골목투어는 일반 코스 5개, 특별 코스 2개(맛'야경투어) 등 모두 7개 코스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2만7천66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는데, 제1코스인 북성로를 방문한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북성로는 근대 제국주의 흔적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역사 거리다. 승승장구했던 제국주의 아이콘(미나카이 백화점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건물)이 있고,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식민지인의 몸부림(제화점)이 남아 있다.

세금 혜택을 통해서라도 북성로에 일본식 가게들이 들어서게 하자. 의류점, 미용실, 식당, 술집, 목욕탕, 액세서리 가게…, 뭐든 좋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 거리에 일본식 가게가 이렇게 많은 까닭이 뭐냐?' 궁금증을 갖도록 하자. 해서 자연스럽게 인류의 근대 역사를 알게 하자. 북성로에서 근대 역사를 탐방하고 돌아갈 때는 '식민지인의 신발' 한 켤레씩을 관광 상품으로 맞추도록 유도하자. 그것이 역사를 가르치고, 역사를 상품화하는 길이며, 상품에 스토리를 얹어 판매하는 방법이다. 기쁨도 슬픔도 부끄러움도 모두 역사고,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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