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칼럼] 왕따는 왕따로 맞서야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색안경을 벗고 바로 봐야 한다. 확대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세밀한 관찰이 이해를 오히려 어렵게도 하는데, 이때는 졸보기를 통해 넓게 멀리 보면 큰 맥락 속에 사물이 눈에 들어온다. 신과는 달리 제한된 안목을 가진 인간은 다양하게 세상을 살펴야 한다.

왕따,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분석과 처방이 쏟아졌다. 설득력을 지닌 글도 많지만, 바로보기와 들여다보기가 대부분이라는 느낌이다. 넓게 멀리 보면 어떨까?

외로운 노년을 쓸쓸히 마치고 한참 만에 발견되는 홀몸노인들의 이야기는 집안의 '왕따' 문제다.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가족이라 여기지 않는 사람이 76.6%에 이른다고 한다.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서 직장인 45%가 '직장에 왕따가 있다'고 인정했으며, 그 절반이 넘는 58.3%는 그래서 '퇴사한 직원이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48만 명, 교육과학기술부는 91만 명이라는 결식아동은 비만으로 골치 아픈 우리 사회의 '왕따'다. 동반성장의 당위성이 절실하게 대두되는 배경에는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을 따돌리는 재벌기업의 문제가 깔려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이런 '왕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를 보자. 행정부는 민간인 사찰로 맘에 들지 않는 시민들을 '왕따'시키고, 한'일협정 추진에선 국민 전체를 따돌렸다. 의회에선 소수당을 따돌려 날치기를 강행한다. 사법부에서조차 거슬리는 표현을 한 판사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은근하게 따돌리고(은따), 제도'구조적으로 일어나고, 공권력을 악용하는 등 갖가지 모양새로 '왕따'는 곳곳에 즐비하다. 실태가 이러하니 '왕따'를 학교에서나 일어나는 고립된 현상이라 보고 교육 대책을 운운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상담교사를 몇 명 더 선발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한다고 과연 문제가 사라질까?

오히려 우리의 교육이 '왕따'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제고사로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줄 세우며, 거부하는 교사들을 징계하는 교과부는 어떻게 비칠지.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무시하고, 선택과목을 일방적으로 지정'강요하는 학교는 어떤지. 또한 자율학습은 얼마나 자율적인지. 이런 교육현장에서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하라는 가르침이 어떤 효과를 낼지 곱씹어 볼 일이다.

이제 멀리 보도록 하자. 푸코라는 학자는 근대사회에서 획일적인 행동양식을 부여하고 이에 벗어나는 사람을 억압'교화시키는 메커니즘을 들춰냈다. 권력에 거슬리는 독특함을 일탈로 규정해서 격리'치유하는 '정상화'(normalization)가 사회의 기조라는 말이다. 정신치료뿐만 아니라 미술치료, 음악치료, 문학치료, 힐링캠프 등이 활개치는 요즘 세태의 정곡을 찌르는 듯하다. 이런 것이 보다 일찍 본격화되었다면 반 고흐나 베토벤, 괴테 같은 사람들이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지 푸코는 통렬한 비판을 했다.

'왕따'는 근대문명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이지메'가 학교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된 지 오래다. 미국'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도 '스쿨 불리'(school bully)가 사회적 차별'따돌림의 맥락에서 고민되고 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를지라도 '왕따'로 약자는 자유를 잃고, 강자는 도덕성과 인간성을 상실하며, 사회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박탈당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목렌즈에 비친 '왕따' 문제는 너무 널리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기왕 멀리 본 것, 더 멀리 보면 전혀 다른 '왕따'가 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선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가를 도자기 조각에 적어 6천 표가 넘으면 추방시켰다. 도편추방제(Ostrakismos)라 불리는 이 '왕따'는 약자를 '크게'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강자'를 따돌리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시민의 자유와 다양성을 뺏기지 않고 지켜냈다.

어쩌면 정상인을 만들려는 상담과 치유가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대 희랍인들은 위협적인 강자에 대한 '왕따'에서 답을 찾아냈다. 친구를 협박하는 학생들을 추방하라는 말이 아니다. 크게 보면 그들도 사실 약자다. 약자를 억누르는 우리 사회의 강자에게 희랍적 의미의 '왕따'로 맞서야 한다. 이런 '왕따'를 직접 목격할 때 비로소 학생들은 절실한 깨달음과 따르고픈 본보기를 얻을 것이다.

이재정/대구대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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