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수종을 앓고 있는 전금영 양

중2 소녀의 작은 꿈 '가발 안 쓰고 학교 가는 것'

'수모세포종 뇌수종'을 앓고 있는 중학생 금영이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빨리 나아서 공부도 하고 디자이너도 되고 싶지만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이제는 학교 갈 때 가발 쓰지 않고 가고 싶어요."

9일 오후 대구 달서구 용산동 한 아파트에서 만난 전금영(가명'14'여) 양.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집에서 TV로 음악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를 묻자 금영이는 "비스트"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뇌종양의 일종인 '수모세포종 뇌수종'을 앓고 있는 금영이는 오전 8시 30분쯤 아버지와 함께 학교까지 15분 정도 걸어서 등교한 뒤 1교시 정도만 수업을 듣고 귀가한다.

항암치료 탓에 머리카락이 빠져서 가발을 쓰고 등교한다. 학교를 걸어갔다 올 때마다 다리도 풀리고 몸에 힘도 빠지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학교 분위기라도 알려면 이 방법 뿐이다.

아버지 전상현(44) 씨는 힘겨워하는 딸을 데리고 갈 때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건강하고 살림도 잘 하던 착한 딸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씩씩하던 아이가…

"금영이는 원래 씩씩하고 의젓한 아이였어요. 밖에서 놀다가 팔을 다쳐도 알아서 병원을 찾아가 치료받고 왔을 정도였으니까요."

씩씩하고 건강했던 금영이가 아프기 시작한 건 올해 3월.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쓱거린다고 했다. 처음에는 체해서 그런 줄로만 생각했다. 약을 지어먹어도 낫지 않자 대학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았다. MRI를 보더니 담당 의사는 "소뇌 뒤쪽에 종양이 생겨 뇌수액이 순환되지 않고 있다"며 '수모세포종 뇌수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진단을 받은 3월 19일 바로 입원을 했고, 이틀 뒤인 21일에 종양 제거 수술을 했다. 하지만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고, 23일에 뇌수액 순환장치를 뇌 속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금영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그 몸서리치는 시간을 지금도 똑똑히 떠올릴 수 있다. 그만큼 초조하고 힘들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하느님, 부처님 뿐만 아니라 빌 수 있는 모든 신에게 '금영이만 살려주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빌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퇴원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방사선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많이 약해졌다. 방사선치료를 받다 보면 다른 장기들도 같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몸무게도 10kg이나 빠졌고, 조금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때가 많다. 금영이는 "30분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음식도 못 넘긴다"고 했다.

◆ 아버지에게 생긴 몸과 마음의 상처

금영이는 지금 어머니가 없다. 6살 때 쯤 부모가 이혼을 했기 때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여성의류 사업이 7년 만에 실패로 끝을 맺었다.

금영이의 양육까지 떠맡은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건축자재 납품부터 화물차'택시 운전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하루에 14시간 씩 운전해야 겨우 먹고 살 만큼 벌 수 있었어요." 지금 아버지가 앓고 있는 디스크도 이때 얻은 병이다.

이혼의 아픔과 생계에 대한 걱정이 어느 정도 해결돼 갈 때 쯤 다시 아버지는 큰 실의에 빠지게 됐다. 막내 아들이 베란다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진 것.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잠깐 슈퍼마켓에 갔다 오는 사이에 베란다 방충망에 기대서 밖을 내다보던 아들이 갑자기 방충망이 밖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함께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술로 세월을 보냈죠."

그러던 중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술도 줄이기 시작했고, 성주의 한 참외밭에서 일용직으로 일손을 도와주고 트럭 운전 등을 하면서 다시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금영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이 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금영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 하지만 딸의 병 간호에 매달리다보니 생계조차 이어갈 수 없게 됐다. 수술비 1천300만원도 달서구보건소의 소아암 환자 의료비 지원으로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병원비와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지급하는 60만원가량의 보조금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으로 간신히 해결하고 있다.

아버지는 앞으로 두 딸을 키울 걱정에 암담하기만 하다.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큰 딸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금영이 병원비만 자꾸 쌓여가고 있기 때문. 아버지는 "몸에 좋은 음식도 많이 해 주고 싶고 서울에 있는 좋은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해 주고 싶지만 그렇게 못 해주는게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금영이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싶고, 좋아하는 가수인 '비스트'도 보고 싶다. 해외 여행도 가고 싶고, 패션 디자이너가 돼 보고 싶다.

금영이는 "2학년 시작할 때 아파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못 만났는데, 빨리 나아서 새 친구도 많이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상현 씨는 딸의 소박한 소망조차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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