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경제위기…유통·제조업 곳곳에서 이상 징후

출혈 세일에 나서도…포항 롯데百 첫 마이너스 매출, 포스코 영업 반토막

지난 6월 폐쇄된 동국제강 1후판공장의 황량한 모습이 포항의 경제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지난 6월 폐쇄된 동국제강 1후판공장의 황량한 모습이 포항의 경제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롯데백화점 포항점이 2000년 창립 이후 올해 처음으로 매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매년 두 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가던 백화점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대구의 경우 백화점 간 경쟁이 치열해 매출이 상당히 떨어졌지만, 포항은 오로지 경기불황이라는 한 가지 요인 때문"이라며 "매출 정상화를 위해 세일 기간을 평소보다 2배가량 늘였고 상품권 행사와 노세일 브랜드 세일도 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아직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한다. 수익면에서 남는 게 없는 출혈 세일이지만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는 게 백화점 측의 답변이다.

포항시 북구 두호동에 자리한 A피부과. 올해 초 피부관리 등을 위해 3억원에 달하는 의료기기를 도입했으나 고객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이 병원 원장은 "경기가 좋아야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요즘은 먹고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주머니를 열지 않는 것 같다"며 "이 상태가 1년 정도 지속된다면 병원문을 닫아야 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포항지역 대형병원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가까운 경주역에 KTX가 운행되면서 진료를 위해 서울행을 택하는 환자들이 많아 매출이 줄고 있다. 여기에다 대형병원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모델링과 전문화 등을 앞다퉈 진행하면서 이에 따른 지출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포스코는 1분기 영업실적이 지난해에 비해 반토막났다. 결국 직원들의 성과금을 30%밖에 주지 못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고 했다. 동국제강 역시 후판 수요 조절을 위해 지난달 1후판 공장을 폐쇄했다. 영업실적도 좋지 않아 이달 7일 창립 기념일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변변한 성과금을 주지 못했다. 현대제철은 선박'자동차 등 계열사들이 많아 그나마 철강 공급이 원활하지만 전반적인 철강 경기를 고려해 대외 지출을 줄이고 있다.

포항에서 15년째 작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7) 씨. 올 상반기부터 평년 매출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공사 수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6개월이 넘는 적자 행진에 결국 10명의 직원 가운데 4명을 내보냈다. 그는 건설 경기가 바짝 얼어붙어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포항이 사상 초유의 경기불황에 시름하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유럽발 경제 위기의 후폭풍이 몰아치면서 철강산업 일변도의 산업구조를 다각화하지 못한 포항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대부분의 철강 기업들은 상반기 실적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다 하반기 역시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황형 소비패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롯데백화점 포항점이 개점 이후 처음 마이너스 매출을 기록했고, 이마트 포항점과 홈플러스 포항점 등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0%가량 매출이 감소했다. IMF 때에도 없던 현상이다. 남구 대이동의 식당 주인 김모(49) 씨는 "지난해 말 1억3천만원에 거래되던 가게를 올해 9천만원에 내놨는데도 찾는 이가 없다"며 "대부분의 식당들이 매출 급감으로 건물세와 땅값이 10~20%가량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병원, 식당 등 실물경기에 민감한 업체들은 "현재의 위기가 곧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포항지역은 호재보다 악재가 많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포항상공회의소 김태현 팀장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 및 첨단과학기술 분야로 산업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 부품단지 조성, 영일만 배후단지 등 국책 사업의 조속한 추진이 앞으로 포항의 경제를 좌우할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포항'박승혁기자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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