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트남 호찌민시 1군 응웬 주 거리 107번지. 대한민국 총영사관 앞 거리에는 20대 전후의 젊은 베트남 여성들이 오늘도 열대의 뜨거운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 줄을 늘어서 있을 것이다. '한꾸억'(한국의 베트남 발음)으로 가려는 행렬이다. 3년 전 베트남에 머물던 시절 총영사관을 드나들 때면 볼 수 있던 그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그들 중 누군가는 지금 어디선가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 2세가 태어났을 수도 있다. 다문화가정이다.
#2. 지난달 중순 대구오페라하우스. 뮤지컬 '아리랑 판타지'가 무대에 올랐다. 주인공 '보리'는 필리핀 엄마 '이자벨'과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홉 살 소녀다. 이자벨이 진정한 가족을 이루고, 보리가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딛고 꿈을 이뤄 나간다는 줄거리다. 이자벨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보지 말고, 어떤 사람인지 봐줘요"라고 외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결혼이주여성들의 외침이기도 하다.
경북도 내 결혼이주여성은 지난해 말 1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의 자녀 수도 비슷하다. 두 항목 다 대구는 경북의 절반 정도다. 전국적으로 결혼이민자는 20만 명, 자녀들은 15만 명에 가깝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는 10명 가운데 4명에 이를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수는 매년 2만 5천 명씩 늘어난다.
군대에서도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지난해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은 2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2030년쯤이면 1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이들을 입영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복무 기간 단축과 입영 대상자 감소 원인까지 겹쳐져 현역병 부족 현상을 빚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 산업생산 그리고 국방까지 의존하면서 이들과 공존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물론 사회 일각에서는 다문화가정 출신자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다. 사회 불안 요인이 많아진다는 지적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인도, 아랍, 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과 그 2세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습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005년 프랑스 파리, 2011년 영국 런던의 폭동 사태는 외국인 이민 2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들은 세상에서 어떤 돌파구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냉대와 차별 그리고 분노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들이 '폭탄'이 될지 건전한 구성원이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 하기에 달렸다.
하지만 우리 국민 의식 수준은 경계 경보 상황이다. 다문화 수용성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30%대에 머문다. 유럽 18개국은 70%가 넘었다. 우리 유학생이나 교포들이 인종차별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는 거품을 물면서도 우리 스스로에게는 비슷한 잘못을 용인하려는 이중 잣대다.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초점을 맞춰보자. 이들 대부분이 아직 초등학생이거나 그 이하이고 청소년들은 소수라서 사회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머리가 굵어지는 몇 년 후면 상황은 확 달라질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몇 년 후가 아니라 당장 지금도 문제다. 다문화가정 출신들이 학교 폭력과 왕따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내국인 가정의 자녀들 사례처럼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실상은 '안 봐도 비디오'다.
답은 하나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변부터 바꿔야 한다. "저런 애와는 사귀지 마라"는 학부모들의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 이들과 친구로, 동료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다. 학교는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변해야 한다. '인종차별금지법'과 같은 강제적'제도적 장치도 있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할 것이다.
대표적인 다문화가정 출신 스타인 인순이가 불러 유명해진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 가사는 이렇다.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거위의 꿈이 채 피기도 전에 냉대와 차별로 시들어 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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