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조원 나라 살림 효율·투명하게 관리"…강호인 조달청장

30여 년 전 대구 대륜고 교정에서 시인의 꿈을 품던 한 소년이 100조원(조달청 직접 관할 52조원) 규모의 시장을 주무르는 큰 손이 돼서 돌아왔다. 강호인(55) 조달청장이다.

국내조달시장은 연간 규모만 100조원, 국내 총생산의 8%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 청장의 취임 일성은 조달청의 정책 기능 강화였다. 그는 "조달청을 단순히 정부나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조달해 주는 기관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정책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달 시장의 큰 규모 때문에 참여 기업들이 각종 편법을 들고 나오지만 강 청장에게는 어림없다. 평소 지론이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으려 하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서 관을 고쳐 쓰지 말라) 일 정도로 청렴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전 직장인 기획재정부에서도 '그(강 청장)에게는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였고, 원칙론자적 행동 때문에 주변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청장 취임 직후에는 청렴교육을 분기별로 정례화 하는 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지금도 "인생에 있어 가장 어려운 공부가 혼자 있을 때 자중하는 신독(愼獨)"이라며 청렴 의지를 가다듬고 있다.

최근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학교 문제에 관심을 갖던 강 청장은 최근 부하직원들에게 학교 급식 문제를 강조했다. 교내 환경 개선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 급식 식자재의 질적 변화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식자재 공급 업체 비리를 뿌리뽑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도록 지시했다. 특히 급식 공급 계약은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공개경쟁 방식으로 전면 개편하는 한편 기존 식자재 공급 업체에 대한 일제조사를 실시해 위생환경을 철저히 파악하기도 했다.

강 청장은 조달청을 하드웨어 조직에서 소프트웨어 조직으로 바꿔나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단순히 좋은 제품을 싸고 빠르게 조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제품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고 관리하는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가격이 쌀 때 원자재를 사서 조달청 창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빼서 쓸 수 있는 '창고 증권 방출제도'나 조달청에 비축해 놓은 구리를 기초 자산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함께 구리 상장지수펀드(ETF)를 개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노력 때문에 기업들은 좀 더 싸고 쉽게 자재를 조달할 수 있게 됐다. 강 청장은 "직접 운송을 해 줄 것이 아니라 화물차가 다닐 수 있는 고속도로를 깔아줘야 한다"며 "교통량이 늘어날수록 매연이 많은 버스나 과적 차량, 무등록 차량이 많아질 텐데 이를 단속하고 솎아내 유통질서를 확립해주는 것도 조달청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달청은 최근 경사가 생겼다. 베트남, 코스타리카, 몽골, 튀니지 등 개발도상국이 조달청 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그대로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내 조달시스템 수준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외화벌이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선진국인 유럽연합(EU) 국가들도 재정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 전자조달시스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 청장은 지금이 한국 기업들이 해외 조달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해외 조달시장 규모는 2조달러. 특히 EU는 전자조달 비중이 5%에 불과해 시장 개척 여지가 무척 크다고 강조했다. EU는 당초 2010년까지 공공 분야 전자조달 비중을 50%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7개 회원국별 이해가 엇갈리는 데다 경험도 부족해 전자조달 시장이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강 청장은 나라장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비결로 '효율성'과 '투명성'을 꼽았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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