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에 갈 필요가 없네. 파도가 출렁거린데이~."
12일 오후 대구 북구 고성동 주민센터 앞. 골목길 사이로 낮은 담들이 이어져 있다. 70m가량 이어진 주택가 벽에는 노란색 국화(봄)와 푸른 파도(여름), 곱게 물든 단풍(가을), 눈 내린 산(겨울) 등 사계절이 그려져 있다. 낡은 벽들이 새 옷을 갈아입자 집주인은 물론 골목을 지나는 행인들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국화꽃 벽화의 주인이 된 구춘자(81'여) 씨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집에 놀러오면 집이 예쁘다고 칭찬한다. 집 앞에 노란 국화를 심어놨는데 뭐가 진짜 꽃인지 구분이 안 된다"며 웃었다.
낡은 주택이 밀집해 있는 대구 북구 고성동에 화사한 벽화 거리가 생겼다. 주민단체가 사업을 구상하고 동네 토착 벽화가들이 집주인과 손을 잡고 벽화를 그린 것이다.
벽화작업은 올 1월부터 시작됐다. 고성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올 2월 대구시 순수민간주도형 주민자치사업에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을 신청해 500만원을 지원받았고 여기에 동발전기금 150만원을 보탰다.
하지만 갈라진 벽을 보수하고 그림을 그리자니 인건비는 커녕 재료비를 대기도 벅찼다. 마침 고성동에 작업실을 둔 벽화디자인업체 '비루빡에'가 손을 들었다.
비루빡에 대표 노경환(31) 씨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바꾸는 벽화 작업을 다른 작가들 손에 맡긴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어서 벽화작업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벽화를 그릴 때 동네 어르신들이 '고생한다'며 음료수와 국수 등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작업할 때 미소가 퍼졌다"고 웃었다.
벽화는 주민들과의 소통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벽화를 그리기 쉬운 깨끗한 집이 많은 곳보다 노후 주택이 밀집한 골목을 선정했고 주민자치위원회와 작가, 집주인들과 3차례 토론을 거쳤다. 한국화 느낌을 살린 '사계절'을 테마로 정했고, 집주인들이 직접 자신의 집에 어울리는 벽을 골랐다.
벽화를 그린 유창재(30) 작가는 "낡은 콘크리트 벽 때문에 칙칙한 분위기의 골목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어울린다고 판단했고, 도안을 그려 주민들의 동의를 구했다"면서 "푸른 파도 벽화가 있는 집은 원래 초록색이 주요 색상이었지만 집주인의 제안으로 푸른 느낌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현재 벽화 거리는 주민센터 앞 70m 구간의 9가구에 불과하다. 고성동 주민센터는 앞으로 주민 합의를 거쳐 동발전기금 1천500만원을 들여 다른 골목에도 그림 입히기에 나설 예정이다.
고성동 주민센터 한태명 동장은 "벽화 거리가 생기자 주민들이 잔치가 난 것처럼 기뻐해 동네 분위기가 밝아졌다"면서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행인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거리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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