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일본의 중국 봉쇄에 가담할 것인가

1955년 이후 일본은 줄곧 미'일 동맹을 축으로 하는 자민당이 정권을 잡아왔다. 1993년 7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자민당은 잠시 정권을 내주기도 했으나, 10개월 만에 연립을 통해 정권에 복귀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9월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일본 정치의 혁명적 변화였다. 민주당 정권은 외교 안보 정책에서 자민당의 미국 일변도, 군사대국화 노선을 벗어나 아시아 중시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이를 상징한다.

이달 2일 오자와 이치로 그룹이 "현재의 민주당은 정권 교체 당시의 민주당이 아니다"고 비판하면서 탈당, 신당을 만들었다. 오자와 그룹은 민주당 정권 성립의 최대 공로자였다. 오자와는 외교 안보 면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동반하는 보통국가론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 및 중국과의 신뢰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2009년 12월에는 의원 143명을 거느리고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오자와 그룹의 탈당은 민주당이 자민당과 연합하여 추진하는 소비세 인상에 대한 반대를 명분으로 하고 있으나, 민주당의 자민당으로의 회귀에 대한 반발의 의미도 적지 않다.

집권 3년째의 민주당은 정권 교체를 무색게 하며 도로 자민당으로 회귀하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는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현재의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외교, 군사 면에서 자민당의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자민당은 1999년과 2003년에 이른바 주변사태법과 유사(有事) 3법(무력공격사태 대처법,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자위대법 개정안)을 제정했다. 주변사태법은 일본 주변(대서양까지 포함)에서 전개되는 미군의 군사 작전을 후방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따르지 않는 자나 지자체에 대해 정부는 강제력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사 3법은 일본에 대한 무력행사의 위험이 있을 때에는 선제공격까지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이들 법안은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전쟁 포기를 선언하고 있는 일본의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들 법안이 '전쟁법'이라 비판받는 이유이다.

여기에 더해 노다 정권은 금기시돼 왔던 핵무장, 집단자위권 행사, 평화헌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 부칙에서 원자력 이용을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해, 핵무장 가능성의 길을 열었다. 또 일본의 장기 비전을 검토하고 있는 정부위원회는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총리에게 제출했다. 우방국이 공격을 받으면 일본이 직접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 단계로 유엔평화유지군에 참여하고 있는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으로 있다. 이러한 군사화 노선을 총결산하는 의미로 자위대를 군대로 합법화하고, 평화조항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문제는 일본의 군사화 경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정치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는 "일본의 가장 한심한 점은 혼자서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강경하다.

일본의 군사화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일 동맹에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봉쇄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중국 봉쇄는 중'일의 긴장을 높일 것이며, 그 사이에 놓인 한국의 안보 정책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한국의 대응이 쉽지 않다. 한국은 아직 중국을 고려한 안보 전략의 틀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을 둘러싼 혼란과 외교 추태는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 것이다. 한국이 돈은 중국에서 벌면서 미'일의 봉쇄 전략에 가담하고 있다는 중국의 비난은 가볍지 않다. 동아시아의 신냉전 상황에서 긴 안목을 가진 국가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 중국, 일본, 북한을 미지수로 하는 다항방정식을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

계명대학교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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