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집트 여행 가기

매년 다이어리를 사면 항상 그해 목표를 적곤 한다. 목표는 이미 작년부터 정해 놓은 것이다. 새해가 오면 작년에 생각한 목표를 적고 또 내년에 이룰 목표를 생각해 둔다. 올해 다이어리에는 내년 목표인 '이집트 여행 가기'를 적었다.

예전 다이어리를 모아둔 상자에서 중학교 때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지금보다 더 귀엽고 반듯한 글씨로 정리되어 있는 다이어리. 열여섯 살 소녀 시절 나를 발견한 기분에 살짝 들떴다. 혼자 그 다이어리를 보며 웃고 부끄러워하던 중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10년이 지나 나이도, 외모도, 생각도 변했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 그때 적은 나의 목표였다. '20살이 넘으면 꼭 해보고 싶은 것. 이집트 여행 가기, 이집트에 가서 피라미드가 얼마나 큰지 발로 걸어서 직접 확인하기. 스핑크스 앞에 서서 눈 마주치기.'

이 글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피라미드 크기를 확인하고 스핑크스의 눈을 마주 보고 서 있는 나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16세 소녀는 정말 단순히 피라미드가 얼마나 큰지 궁금했고 스핑크스와 눈을 마주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이집트를 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목표가 10년이 훨씬 지나 내년 이집트 여행을 목표로 한 나와 다시 마주한 것이다.

다만 여행의 목적은 그때와는 달라졌다. 드넓은 사막에 몸을 내맡기는 낭만을 기대하고, 이집트의 전통과 특유의 문화를 즐기는 게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설레는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이번 해 목표 달성하기. 한 해 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내년의 목표 또한 나에겐 그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간단한 의사소통 익히기. 세 번째는 여권 만들기. 네 번째는 여행비 모으기. 솔직히 여행비 모으는 게 가장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실천하는 마음 새기고 또 새기기.

어떤 사람들은 여행 다녀오겠다 하면 이렇게 말한다. " 왜? 무슨 일 있어? 많이 힘들어?"라고 말이다. 그것은 도피일 뿐 여행이 아니다. 무슨 일이 생겨 떠나는 것은 어차피 돌아와도 그 일은 그대로니 말이다. 여행은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떠나는 다이어리 같다고 할까. 내년 여행을 목표로 삼고 준비하는 것은 20대의 반성 시간을 갖기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에 대한 두려움에 생각만 하고 접었던 '여행 겁쟁이'인 나에 대한 반성. 성인이 되면 꼭 하겠다던 나의 목표를 잊고 있었던 무관심에 대한 반성들 말이다. 아마 그곳에 가면 더 많은 알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반성들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난 2012년의 목표 달성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내년에는 16세 소녀와 스핑크스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할 수 있길 기대하며.

김하나 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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