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소속감

마더 데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평생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가장 큰 재앙은 나병이나 결핵이 아니다. 소속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그들을 가장 슬프게 했다." 우리와 함께 살면서도 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소속되기를 애타게 열망하면서도 스스로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처럼 자포자기해 버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정이 딱한 주변 사람을 만나게 된다.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려면 내 마음 안에 화롯불이 타고 있어야 한다. 그 화롯불의 불쏘시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연민일 것이다.

우리는 이웃 사랑을 큰 것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돈이 없어서, 내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 하면서 이웃을 위한 봉사나 헌신을 어려워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소유와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이웃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고 가엾은 마음을 지닌다면 어떠한 처지와 여건에서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빠 정에 주렸던 그 아이는 아빠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작자에겐 될수록 이야기를 걸어 올 기회를 줄여 나갔다."

앞서의 예문에 나오는 '주리다'와 '줄이다'를 구별해보자. '주리다'는 제대로 먹지 못하여 배를 곯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여 몹시 아쉬워하다라는 뜻으로 "그때는 먹을 게 없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걸식을 다녔지."로 쓰인다. '줄이다'는 물체의 길이나 넓이 등이 본디보다 작아지다, 힘이나 세력 따위가 본디보다 못하게 되다라는 '줄다'의 사동사로 "집을 줄여 이사를 하였다." "몸무게를 줄여야 건강해질 수 있어."로 쓰인다. '줄이다'는 또 말이나 글의 끝에서 할 말은 많으나 그만하고 마친다는 뜻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이만 줄인다."로 활용하기도 한다.

'주리다' '줄이다'와 같이 '저리다' '절이다'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저리다'는 뼈마디나 몸의 일부가 오래 눌려서 피가 잘 통하지 못하여 감각이 둔하고 아리다, 가슴이나 마음 따위가 못 견딜 정도로 아프다라는 뜻으로 "나는 발이 저려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뼈가 저린 것을 보니 내일 비가 오겠다."로 활용한다. '절이다'는 푸성귀 생선 따위에 소금기가 배어들어 숨이 죽다, 땀 버릇 따위가 흠뻑 배어들다라는 '절다'의 사동사로서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다." "생선을 소금에 절이다."로 쓰인다. 감각이 둔하고 아릴 경우에는 '저리다'를, 절게 할 경우에는 '절이다'로 구분한다.

"베푸는 마음, 나눔이라는 신성한 방법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의 진정한 통로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나눌 때에만 비로소 찾아오기 때문이다."(나폴레온 힐의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중에서)

이번 한 주 동안 이 말을 각자의 가슴에 새겨보면 어떨까요.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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