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란에서 새누리당에 붙였던 별명은 4가지였다고 기억된다. '탁구당(黨), 비아그라당, 콜롬보당, 콜럼버스당'이다. 물론 구 한나라당 시절에 붙였던 별명이다.
제 실력보다는 열린우리당이 계속 에러(Error)를 내는 덕분에 점수 땄다는 게 '탁구당'이었고 당 간부들이 잇달아 성추행 물의를 일으켜 얻은 별명이 '비아그라당'이었다. 그 뒤 지난 대선 때 자당(自黨) 후보(이명박)의 뒤를 캐내겠다고 설치다가 얻은 별명이 '콜롬보당'. 그리고 4'27 보선 참패 후 실민심(失民心)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감(感)도 못 잡다가 얻은 게 '콜럼버스당'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대선을 앞두고 별명이 또 하나 더 붙게 됐다. 바로 '망박구당'(望朴口黨)이다.
엊그제 매일신문이 '박근혜 입만 바라보는 당'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모두 10자(字)로 된 기사 제목을 4자로 줄이면 '망박구당'이 된다. 당 지도부가 정치 소신보다는 박근혜 후보의 입만 쳐다보며 눈치코치 살펴서 따라가고, 박 후보가 '아' 하고 '어' 할 때마다 당 지침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게 과연 공당(公黨)이냐는 비판이었다.
본디 박근혜 후보는 어릴 때부터 입이 무거운 편이었고 말수가 적은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측근들이 늘 쳐다보고 있어야 할 만큼 말이 많이 튀어나오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특히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함께 청와대에서 지내던 때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데 자신의 사진이나 신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매우 꺼렸고 때로는 '엄마는 내 사정을 모른다'며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15살 무렵 모 신문사 여기자와 식구들이 식사를 했을 때도 동생 근영이는 여기자에게 '기자들은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쓰고 과장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근혜는 끝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그런 성격 탓인진 모르나 정치인이 된 지금도 그녀의 입은 진중한 편이다. 국회 복도 같은 델 오가며 툭툭 던지는 대답도 대부분 단답(單答)형이거나 선문선답(禪問禪答) 식의 절제된 어법이 많다. 그래서 오히려 그녀의 입은 말수가 적은 탓에 국민들이나 언론, 여'야 정치권이 더 쳐다보는지도 모른다. 에두르거나 경계가 불명확한 어법은 듣는 사람의 오판을 유도하기가 쉽다. 특히 말 한마디까지 눈치로 가려야 하는 아랫사람들에겐 때로 '오버'하거나 '과천부터 기어가게' 할 위험이 있다.
말이란 속뜻을 넘겨짚어만 가다 보면 소통도 제대로 안 된다. 설뚫린 지레짐작식 소통은 아예 막혀 있는 불통보다 더 못한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지금 '불통'(不通) 이미지로 공격받고 있는 박근혜식 소통은 문제가 있다. 물론 지도자가 자신의 어법이 지레짐작을 유도하는 허점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계산해가며 말할 수 있는 경지에 닿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영남대학교 부근을 지나는 경부선 열차 안에서 '저기가 신축 중인 영남대학입니다'는 비서의 설명에 '어디야, 잘 안 보이네'라고 한마디 던지는 바람에 멀쩡한 설계까지 바꿔 눈에 띄도록 높이 지어 올린 게 지금의 최고층 도서관 건물이다. 그런 게 절대 권력자의 입의 힘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일 이후 말을 많이 아꼈다고 하지만 박근혜로서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그런 권력자 입의 힘을 수없이 겪고 보아오는 동안 나름 터득해온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신의 소통에서도 아버지로부터 배우고 익힌 경륜의 장점을 끌어내야 한다. 지도자의 입은 가벼움보다는 과묵, 신중, 단답 어법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통까지 가서는 곤란하다. 예로부터 '세 번 간언해도 (황제가) 듣지 않으면 스스로 물러난다'는 삼간불청즉거(三諫不聽則去)의 제도가 있긴 했다. 직언을 듣기 싫어한 권력자 쪽에서 만든 불통 핑계 조항인 셈이다. 측근의 직언을 듣지 않고 세 번을 외면해서 물러서게 만드는 불통 권력은 반드시 무너진다.
새누리의 당직자들은 사간'구간(四諫'九諫)을 해서라도 바른말을 해주고 박근혜는 삼간불청즉거를 방패 삼아 귀를 막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부 '종박'(從朴)들과 귀 닫은 여왕이 망박구당을 만들어 대권을 망칠까 해서 드리는 고언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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