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40) 씨는 얼마 전까지 악몽에 시달렸다. 병실에 있던 자신의 몸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낯선 곳에 침대와 함께 내팽개쳐지는 꿈이었다. 병실 천장에서 비가 내려 침대가 물에 잠기는 꿈도 꿨다. 온 몸과 옷이 비에 젖어도 누구도 김 씨에게 우산을 씌워주지 않는 외로운 꿈이었다. 김 씨는 올해 3월 중국집 숙소에 불이나 온 몸에 큰 화상을 입었다. 이제 중환자실을 벗어나 기운을 되찾고 있지만 그는 혼자 마주해야 하는 세상이 두렵기만 하다.
◆지울 수 없는 상처
2012년 3월 8일 오전 1시 30분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한 3층 건물. 1층에 당구장이 들어선 컨테이너 가건물인 이곳 3층에는 중국집 배달원인 김 씨의 숙소가 있었다. 김 씨는 중국집 동료 A씨와 함께 1년째 지내고 있었다. 하루 12시간 이상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 배달을 하고 나면 김 씨는 파김치가 된 몸 때문에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날 그는 환한 불빛 때문에 잠에서 깼다. 불이었다. 집 안은 이미 붉은 화염으로 휩싸여 있었고 김 씨가 입은 옷에도 불이 옮겨붙었다. 그는 3층에서 1층까지 불에 타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바깥으로 나와 "불이야!"라고 크게 외치고 주변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쯤 A씨가 생각났다. 그는 전체 몸 60%에 달하는 부위에 2~3도 화상을 입고 목숨을 건졌지만 A씨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 사고는 그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함께 지냈던 동료를 돕지 못하고 혼자 불 속을 헤쳐나왔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사고 이후 그는 화상치료 전문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 반을 지냈다. 죽음과 삶을 오갔던 당시에 김 씨는 그 때 악몽에 시달렸다. 꿈 속에서 그는 어두컴컴한 산 한가운데서 눈을 뜨거나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신음하기도 했다. 두 달 뒤 겨우 의식을 되찾고 바라본 자신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화상을 입은 손가락은 관절이 굽혀지지 않았고, 얼굴과 등, 팔과 다리에도 검게 변한 화상 흉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김 씨의 고향은 경북 구미. 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뒤 1년이 채 안 됐을 무렵 어머니(68)는 차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을 정도로 정신 건강이 나빠졌다. 부모에게 의지할 수 없었던 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작은 섬유공장부터 갈비집 불판닦기, 10년 전에는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구미에서 피자 가게를 개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빚까지 내 시작한 피자 가게는 경기 불황으로 개업한 지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아야 했다. 김 씨는 "그래도 젊고 몸이 건강하니까 뭐라도 하고 살면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5년 전 울산에 취업을 해 어머니와 함께 그곳으로 갔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김 씨는 대기업 하청사인 자동차 부품공장에 취업했다. 그때 2년 간 알고 지내던 직장 동료가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했다. 평소 주식에 관심이 많았던 그 동료는 김 씨에게 "괜찮은 종목이 있는데 투자를 하려니 돈이 모자란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보증을 서달라"고 제안했다. 김 씨는 "그 동료가 주식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종종 봤기 때문에 의심없이 보증을 서줬다"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 동료는 투자에 실패했고 3천만원의 빚만 김 씨 앞으로 남긴 채 잠적했다. 당시 결혼을 결심한 여자도 있었지만 미래를 위한 종잣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면서 결혼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김 씨는 직장 동료와 사랑에 배신 당한 울산이 싫어 무작정 고향인 구미로 내려갔다. 그렇게 3개월 간 구미에서 중국집 배달을 했고 월급 30만원을 더 많이 준다는 경북 칠곡군의 중국집 광고를 보고 그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일을 하면서도 그는 꽤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도로와 골목길에서 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을 뿐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3월 화재로 김 씨는 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앞으로 삶이 걱정
5개월 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발생한 입원비와 치료비는 1천여만원. 김 씨가 중환자실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도 병원비는 계속해서 불어났다. 김 씨가 근무 시간 중에 사고를 당했다면 산재 혜택이라도 볼 수 있겠지만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봉변을 당해 어떠한 혜택도 볼 수 없다. 여태까지 모아둔 돈은 사업 실패와 빚보증 때문에 사라져 중국집에서 일하며 모은 푼돈 몇 백만원이 가진 돈 전부다. 김 씨에게 누나와 형이 각각 1명씩 있지만 이들도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 앞으로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 수백만원을 들여 손발에 흉터재건술을 하고 치료를 해야 하지만 이 비용도 그에겐 큰 부담이다. 만약 당장 퇴원을 한다고 해도 친한 친구 한 명 없는 대구에서 지낼 숙소조차 마땅치 않다.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편이 돼 준 적 없는 세상을 김 씨는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이보다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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