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바늘보다 실이 굵으면

선조(宣祖)는 조급했다. 빨리 왜적을 쓸어버리고 전란을 끝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장수는 섣부른 공격은 화를 자초한다며 미뤘다. 결국 군왕을 업신여기고 능멸한다는 이유로 장수를 잡아들였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던 군왕의 불안감과 조급함이 경사(經史)에 밝았던 눈을 흐리게 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정탁(鄭琢)의 '신구차'(伸救箚)는 극적인 반전이었다. 1천298자, 칠순 노정객의 이 구명 상소문이 한 목숨을 살렸다. 1597년 3월 의금부로 압송된 이순신은 28일간 모진 문초를 당했다. '그를 두둔하는 자는 누구든 용서치 않겠다'는 서슬 퍼런 명에 조정은 숨을 죽이고 입을 닫았다. 그저 빨리 처결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탁은 의문을 가졌다. 조선 최고의 장수를 베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스스로 되물었다.

그는 용렬한 군주 선조의 체면과 자존심을 치켜세우는 한편 이순신을 변호했다. 죽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에둘러 썼다. 노회한 문장으로 감아쳤다. 의도적으로 이순신의 공을 폄하하고 생뚱맞게 원균의 장점과 비교하며 그의 단점을 들춰내기도 했다. 살리는 게 더 중하다 여겨서다.

선조에게 이순신의 존재는 불안한 그림자였다. 의주까지 도망간 군왕의 입장에서 백성의 신망을 받는 장수의 기를 꺾어놓거나 화근을 없애지 않는다면 권좌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조의 이런 비열한 정치도 정탁이 목숨 걸고 엎드려 아뢴 신구차에 흔들렸다. 물론 이순신의 운명이 몇 장의 종이에 달린 것은 아닐 것이다. 명망 높은 장수를 죽이는 게 군왕 스스로 부덕을 자초하는 일이라 적당히 욕보이는 게 현실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선조가 고민한 한 단락을 선조실록은 보여준다. 불과 두 달 전 정유년 1월 이순신과 원균의 불화가 조정에 골칫거리가 되자 신료들에게 "우리나라 사람은 도량(度量)이 좁다"고 선조는 내뱉었다. 죽이느냐 살리느냐도 자신의 도량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죽든 살든 관계없이 전란 중에 보여준 선조의 조급함과 불통은 독한 붕당 정치의 전조였다.

민심은 조급하다. 여전히 '생각 중'인 안철수 원장을 채근하고 독촉한다. 소신이 굳어져 불통으로 비치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독한' 모습에도 고개를 돌린다. 이런 손가락질이 반대자들의 마타도어일 수 있지만 불통의 이미지는 '독선'의 윤곽을 그려내고 '신비주의' '사당화'로 계속 변형된다. 문재인의 지지자들은 '필통'(必通)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반대 이미지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지난 5년 불통의 정치가 낳은 결과다. '돌 뚫는 화살은 없어도 돌 파는 낙수(落水)는 있다'고 했던가. 일은 그렇게 나아간다. 조급함은 체념을 낳고 불통은 불안을 부르는 것이다.

소통은 말이나 정책의 영합이 아니다. 진심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자세다. 하나의 스타일로 고정돼 버티지 않고 상황에 맞게 굽고 휘며 유연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미지는 겉보기일 뿐 진실과는 상관없다지만 그런 이미지가 굳어지면 득될 것이 없다. 때로 지나친 소신은 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공의(公議)와 청론(淸論)이 막히지 않고 저변까지 흘러가면 소신을 알 것이고 결국 여론이 판단할 몫이다. 민심이 아무리 경박하고 변덕스럽다 하더라도 '시사(時事)를 알고' '시비(是非)를 아는 것'은 인지상정이어서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슬로건에 '박모의 꿈이겠지' 시비가 붙고 'ㅂㄱㅎ'이 '비겁해' '비굴해' '보고해' 와 같은 괴상한 패러디가 따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상대가 밉게 보이면 곡해하고 깎아내리는 게 세상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아무리 트위터에 "누구든 자기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잠재력과 끼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고 해도 세상은 '그건 내 꿈이 아냐'라고 냉소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선조에 대한 엄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떻든 선조는 의심 많고 독선적인 군왕으로 후대에 비치고 있다. 백성의 신망을 업은 이순신이라는 한 존재가 군왕의 존재감과 권위를 가리는 상황에서 편벽하고 성마른 군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의 트라우마가 이처럼 깊었다. 정탁은 몸을 굽혔다. 바늘보다 실이 굵으면 일이 되지 않음을 안 까닭이다. 불통이 된 소신과 스타일이 언젠가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의 크고 억센 소가 된다면 이 또한 누구의 허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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