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식의 도리

얼마 전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저희 할아버지가 납치됐습니다. 도와주세요'라는 어느 손녀의 애끓는 사연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백주에 할아버지를 잡아 끌고 가는 건장한 사내들의 하는 양을 보고 지레 납치 사건이라 여겼다. 워낙에 제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남을 예사로이 해치는 세상이라 '참 기특한 손녀구나' 싶어 딴에는 매우 감동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뉴스에서 밝혀진 사건 개요는 그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납치한 범인은 바로 큰아버지 가족이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형은 동생이 아버지를 '빼앗아' 모시고 있으니 다시 자신의 집으로 모셔가려고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당초 무슨 대단한 사건인 양 호들갑을 떤 소녀는 일련의 내막은 죄다 생략한 채, 큰아버지 식구들의 과격한 행동이 잡힌 CCTV 화면만을 인터넷에 올린 터무니없는 거짓 극에 다름 아니었다.

일명 '분당 할아버지 납치 사건'은 아버지가 소유한 상가 건물을 두고 형제간에 벌어진 한심한 재산 다툼이었던 것이다. 두 형제가 벌인 아버지 모시기(?) 쟁탈전은, 정작 진정성 있는 아버지 모시기가 목적이 아니라 '그놈의 돈'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유전유효 무전무효'(有錢有孝 無錢無孝) 즉, 돈이 있으면 효가 있고, 돈이 없으면 효도 없다는 말의 실천(?)이었던 셈이다.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몹시 어처구니가 없다.

돈과 효의 관계를 다룬 문학작품은 얼마든지 접할 수가 있다. 일찍이 셰익스피어는 그의 명작 '리어왕'을 통해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이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은 모두 효자가 된다"고 했다. 재산을 둘러싼 부모 자식 간의 비극적 이야기는 결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물질주의 사고가 팽배해지면서 더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일 따름이다. 서글프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아들을 낳으면 1촌, 그 아들이 대학을 가면 4촌, 군대 가면 8촌, 장가들면 사돈의 8촌, 애를 낳으면 동포, 이민을 가면 해외동포라는 말이 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넘겨주고 끝내 껍데기만 남은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넋두리인 듯하여 그냥 웃어넘길 수만 없다. 그러기엔 너무 씁쓸하다.

이제 효는 아름다운 전설로만 남을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부모의 재산을 노려 맘에도 없는 효도를 다 하는 척하는 지금의 자식들도 멀지 않은 장래에 제 자식들로부터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될 거라는 생각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효는 인간의 근본이라 했거늘.

심지현(문학박사'대구가톨릭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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