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최연혁 지음/쌤앤파커스 펴냄
K는 대학을 졸업하고 실내 인테리어 기술자로 일을 배웠다. 3년간 아파트 건설 현장을 누비며 언젠가는 자신의 업체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꿈도 꿨다. 하지만 건설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노는 날이 더 많아졌다. 설상가상으로 하도급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수천만원의 손해를 본 뒤 인테리어 사업에서 손을 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K를 위한 구직 프로그램도 없었고, 뭘 배워보려 해도 학원비 부담이 컸다. 백화점 주차 관리 요원이나 주유소 점원을 전전하다 기능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지만 100대 1을 넘는 경쟁률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실직의 수렁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K가 만약 스웨덴에 살았다면 지금과 같았을까. 스웨덴에서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던 토마스는 1991년 경제 위기와 함께 3년간 실직 상태가 됐다. 자포자기 상태였던 그가 발견한 건 직업소개소에 붙은 특수용접공 교육 모집 공고였다. 직업소개소는 교육비를 전액 지원했고, 교육이 끝나자 전국을 수소문해 취업을 알선했다. 토마스는 연봉 6천만원을 받는 용접공으로 만족해하며 살고 있다.
스웨덴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다. 국민행복지수는 덴마크에 이어 세계 2위, 분배지수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1년에 5주를 법정 휴가로 사용하고, 6세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무상교육이다. 전 아동에게 아동 수당이 지급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생활보조금이 지원된다.
그러나 노쇠하고 침체된 복지국가의 모습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유럽발 경제위기 한파에서 스웨덴은 멀찌감치 비켜서 있다. 스웨덴의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의 30% 이내로 안정적이고 물가상승률도 2, 3%로 안정적이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 평균 GDP 성장률은 2.4%로 OECD 국가 평균인 1.8%를 훌쩍 뛰어넘는다. 세금이 높고, 복지 지출이 높으면 경제 성장이 낮아진다는 통념이 통하지 않는 셈이다.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이자 경제 선진국인 스웨덴의 내면을 살펴본 책이다. 25년간 스웨덴 현지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로 생활해온 저자는 스웨덴의 갈등의 해소와 상생의 정치, 경제발전과 분배, 탈권력화된 봉사 정치, 평등성과 경쟁력의 비결을 보여준다.
스웨덴 국가 재정의 핵심은 세금이다. 스웨덴의 세금 부담률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부유층은 소득의 60%를 세금으로 내고, 저소득층도 29%를 부담한다. 경제 상식을 깨는 변수는 국민의 행복감과 제도에 대한 신뢰다. 세금은 많이 내지만 복지를 통해 돌려받는다는 믿음이 있고, 형평성 있는 분배가 이뤄져 국민 간의 위화감이 적다. 실직하더라도 국가가 재기할 기회를 보장한다. 개인, 지역, 계층 간 차이가 작으니 반목이나 사회적 갈등도 줄어든다.
반면 정치인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 TV 수신료를 내지 않았다고 장관을 경질하고, 집 증축수리를 허가대로 하지 않았다고 총리를 법정에 세우는 나라다. 스웨덴의 국회의원 이직률은 평균 30%에 이른다. 이유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다. 하루 12시간을 일하면서도 개인 정책 보좌관은 아예 없고, 비서가 없어 전화도 직접 받는다. 바빠서 택시를 타면 공금 유용으로 경고를 받는다. 특권은 오직 법안을 입안할 수 있다는 것. 그 외에는 모두 의무밖에 없다. 청렴성도 높다. 23년 동안 스웨덴의 총리였던 타게 에를란데르는 1969년 총리직에서 자진 하야했을 때 자신이 살 집 한 채조차 없었다.
스웨덴 국민들은 대기업과 기업가들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낸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하고, 기업인은 기업의 이익을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사회적 안전조치에 아낌없이 투자하기 때문이다. 쌍용차 사태와 같은 비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리해고를 당하더라도 회사에서 1년 동안 봉급을 100% 보전해주고 1년 이내 재취업 교육을 책임진다. 창업비의 일부도 회사가 댄다.
복지제도는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고 언제 있을지 모를 사회적 위기의 안전망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기회가 제공되는 '기회의 평등'도 보장한다. 인구나 경제 규모, 역사'문화'정치적으로 크게 다른 스웨덴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금이 자신을 위해 쓰인다는 신뢰감과 투명성, 설득과 타협의 정치, 사회적 기회의 균등, 치밀한 사회적 안전망, 시민사회의 발전이 지금의 스웨덴을 만들었다. 288쪽. 1만5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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