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가슴에 맺힌 응어리 녹여주는 '건널목씨'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김려령 지음/문학동네 펴냄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커다란 바람을 만들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 이것은 비단 자연이나 물리현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미소가 파장처럼 번져나가 수백 명의 기분을 좋게 할 수도 있고, 내가 건넨 따뜻한 위로의 마음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며 거대한 사랑의 물결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완득이'로 유명한 김려령 작가의 작품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성장소설이다.

어릴 적 엄마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안고 있는 동화작가 '오명랑'(역설적인 이름이다)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깃방'을 연다. 오명랑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건널목씨'다. 건널목 아저씨는 빨간색, 녹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검은 카펫에 흰 페인트로 그려 만든 건널목 카펫을 짊어지고 다니며 아이들이 위험하다 싶으면 주저없이 카펫을 펴 간이 건널목을 만든다. 마술처럼 건널목을 만들어내는 그의 선한 마음에 삭막했던 아리랑아파트 주민들도 그를 받아들이고, 분위기도 조금씩 밝아진다.

건널목씨는 단순히 길을 건너게만 해 주는 사람은 아니다. 상처받고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사는 아이들이 그 힘겨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건널목도 되어준다. 가정폭력 속에서 상처받은 도희, 엄마 아빠의 부재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태석'태희 남매의 가슴에도 작은 건널목 하나가 놓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낸 오명랑 작가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 속 맺혀 있던 응어리들을 조금씩 녹여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완득이'를 통해 보여준 작가 특유의 위트로 너무 진지하거나 어둡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도 않은 적정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떤 완벽한 삶이 번쩍 안아 원하는 곳으로 옮겨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 만나기가 또 쉽지 않습니다. 우리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서로에게 작은 건널목이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책 서두에 쓰인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건널목'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 나름의 사연과 상처가 존재하지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가사처럼 이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사람의 힘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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