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모를 한 한국 의료진들의 등장에 까맣게 반짝이는 눈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린다. 두렵고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지금껏 이들을 고달프게 했던 장애를 떨치고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실낱같은 희망이 엇갈리는 눈빛이다. 이들 대다수는 입천장이 뚫리거나 입술이 찢어진 환자, 혹은 손이나 발 얼굴 등에 화상을 입은 아이들.
이들은 지금껏 수술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이런 장애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새로운 삶이 열릴 것이다. 한국에서 찾아온 성형외과 의료진들이 이들에게 남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외모'를 찾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프리카 끝 섬나라
아프리카 대륙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우리에게는 참 멀고도 낯선 나라다.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를 비롯해 각종 희귀 동식물의 보고라는 사실 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마다가스카르는 2010년 말 현재 1인당 국민소득(명목)은 320달러로 세계에서 최빈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체 인구의 8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단순히 금액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 1970년대와 비슷한 경제 수준이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한없이 순박하고 선한 눈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마다가스카르의 말라가시인들. 하지만 이런 착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질병'이다. 워낙 가난하고 힘들게 살다 보니 영양과 위생상태가 좋지 않고,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약을 먹거나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회복될 수 있는 병이라 하더라도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저주받은 사람'으로 낙인찍혀 이웃들에게 소외당하고 살아가야 하지만 달리 의료기술이 발달되지 못한데다 비용 역시 비싸다 보니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의사이자 선교사인 이재훈 씨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당에게 찾아가 부적을 받아가는 것뿐"이라며 "마다가스카르의 마을 2만여 개는 아직도 의사가 없는 무의촌"이라고 했다.
◆안면기형과 화상 환자가 많은 나라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줄여서 '타나'로 부른다)에서 만난 자라(6)는 태어날 때부터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입술이 조금 찢어져 있는 게 무슨 그리 큰 장애일까 싶지만 당장 태어나자마자 젖을 빠는 것부터가 문제가 된다. 입술을 모아 압력이 생기게 한 후 힘껏 젖을 빨아들여야 하지만, 자라의 벌어진 입술은 전혀 젖을 빨아들이지를 못했다. 겨우 입 안으로 흘려주는 우유를 먹고 자라다 보니 자라는 또래 친구들보다 덩치가 훨씬 작고 깡마를 수밖에 없다. 발음이 제대로 되질 않다 보니 말을 배우는 것도 몇 배로 힘이 든다. 더구나 귀까지 좋지 않았던 자라에게는 다른 언청이 장애를 가진 친구들보다 말을 하는 일이 몇 배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자라는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이중 장애를 가지고 있다.
성형외과 의사들로 구성된 지오스트 의료봉사팀 김덕영 원장은 "구순열'구개열 환자의 경우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언어기능, 청력기능의 장애는 물론이고 호흡기 질환까지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구순구개열 환자가 부지기수다.
미카엘(6)은 화상을 입어 손가락이 한 덩어리로 붙어버리고, 겨드랑이와 팔꿈치 역시 살이 들러붙어 제대로 팔을 쓰질 못한다. 마다가스카르에는 화상 환자들도 많다. 움막과도 같은 좁은 집. 주방과 거실의 구분이 별도로 없는 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많다 보니 어린 아이들은 화상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5명 새 삶을 찾아
생명을 다루는 수술은 늘 위험이 잇따른다. 하물며 의료 수준이 낙후된 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의 수술은 더욱 많은 변수를 낳게 마련이다.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을 비롯해 이미 한 달 전 컨테이너에 실어 보낸 수술 장비가 도착하지 않는 등 고난이 줄을 이었다.
당장 수술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술기구는 직접 가지고 왔지만 수술복과 수술포, 거즈 등의 장비가 하나도 없어 수술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수술을 받겠다고 이틀 전부터 수십 시간을 달려온 아이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재훈 씨와 안타티푸치 가톨릭병원 측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수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술은 쉽지 않았다. 마취 문제 때문이었다. 마취는 현지 의사가 맡았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의료사고에 따른 위험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인종마다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한국인 의사보다는 현지 의사가 더욱 적합할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의 낙후된 의료 수준은 기본적인 마취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결국 예정했던 환자 중 전신마취가 필요했던 중환자 10여 명은 안타깝지만 그냥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수술. 하지만 지오스트 봉사팀은 사흘 동안 사력을 다해 수술했고 25명은 환한 웃음을 띠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의료진과 아이들은 마음으로 대화했다. 낯선 동양인 의사에게 맞겨져 차가운 수술대에 오른 아이들은 수술실이 떠나가라 목청껏 울어댔지만 한참 동안 따뜻한 손길로 손을 잡아주고 몸을 쓰다듬어주는 의료진의 손길에 어느새 마음을 놓았고, 수술이 끝난 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는 의료진에 미소로 화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형외과 수술을 한다고 하면 "예뻐지기 위한 수술이냐"고 먼저 물어온다. 으레 성형외과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들이다. 하지만 성형외과의 시작은 원래 예뻐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남들과 같은 '평범한' 외모를 갖고 싶다는 필요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선천적'후천적으로 발생한 각종 외형상의 기형으로 고통받아왔던 아이들. 하지만 이제는 여느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활짝 웃으며 뛰어놀 수 있을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의료봉사 단체 '지오스트'란?
동산의료원 성형외과 출신들 10년째 활동…작년 외교부 산하 법인 인정
'지오스트'(JIOST'Jinsung International Outreach Surgical Team-진성해외의료봉사단)는 대구 동산의료원 성형외과 출신 의사들로 구성된 해외의료봉사 단체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장을 지낸 강진성 계명대 명예교수가 퇴직금 전액을 출연하고 그의 제자 성형외과 의사들과 뜻을 모아 매년 해외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진성(77) 명예교수는 "동산의료원은 100여 년 전 한국을 찾아온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병원으로 당시 의료 수준이 낮아 각종 질병에 시달렸던 한국인들의 생명을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한국의 의료수준을 끌어올리는 데도 결정적 계가 됐다"며 "이젠 우리가 받은 고마움을 전 세계에서 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웃들과 나눠야 할 때"라고 했다.
2002년 결성된 지오스트는 벌써 10년째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주로 구순열, 구개열 등의 선천성 안면기형, 화상으로 인한 안면추형, 화상 후 반흔구축으로 인한 운동장애와 변형, 다지증, 합지증 등의 선천성 손발 기형 등 고도의 전문 성형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한다. 또 현지 의료진들과 함께 수술을 시행함으로써 현지 병원의 의사와 직원들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족들이 속한 지역사회, 나아가 그 국가에 한국의 선진 의료기술을 알리고 있다. 지금까지 요르단, 스리랑카, 필리핀, 몽골, 네팔 등에서 수백 명의 환자들을 수술했으며, 지난해에는 지금껏 해외의료봉사 실적을 인정받아 외교통상부 산하 법인으로 등록했다.
한윤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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