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어줍은 국어실력

"노인의 구시렁거리는 잔소리와 때로는 어쭙잖은 호령까지 들어가며 함께 지낸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냐는 앙탈이었다." "자기가 사는 야트막한 동네 산을 오르고서 산행이라는 말은 어줍잖다."

앞서의 예문에 나오는 '어쭙잖다'와 '어줍잖다'에 대해 알아보자.

'어쭙잖다'는 비웃음을 살 만큼 언행이 분수에 넘치는 데가 있다, 아주 어설프거나 아주 시시하고 보잘것없다라는 뜻이다. "가난뱅이 주제에 어쭙잖게 자가용을 산대?" "어마어마한 이름을 뒤집어씌워 그렇지 실은 사건이 될 턱이 없는 어쭙잖은 일이었다."로 쓰인다. '어줍잖다'는 가끔 '어쭙잖다'와 혼용하기도 하는데 잘못된 표기이다. '어줍다'는 말이나 행동이 익숙지 않아 서투르고 어설프다, 어쩔 줄을 몰라 겸연쩍거나 어색하다라는 뜻으로 '부자연하다, 어색하다, 서투르다, 어설프다'가 비슷한 말로서 "그 일을 안 한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낯설고 어줍기만 하다." "의자에 앉은 봉춘네는 어줍은 듯 옷고름으로 눈가를 닦는다."로 활용한다. '어쭙잖다'는 비웃음, '어줍다'는 수줍음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말에서 앞말이 뜻하는 상태를 부정할 때 보조용언 '않다'를 넣어 '-지 않다'처럼 쓰는 경우가 있는데 '간단하지 않다' '심상하지 않다' 등은 '간단찮다' '심상찮다'로도 줄여 쓴다. 하지만 '같잖다' '괜찮다' '오죽잖다' '하찮다'처럼 줄어든 뒤 별개의 단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가운데가 볼록하게 쏙 나오다, 겉으로 드러나서 또렷하다로 쓰이는 '도드라지다'는 "눈이 가늘고 이마가 도드라진 것이 약삭빠르게 보인다."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그의 모습은 항상 도드라진다."로 쓰인다. '도드라지다'와 비슷한 말로 '두드러지다'가 있지만 '도두라지다'라는 표기는 잘못인 것도 알아두면 좋겠다.

인간은 대부분 남에게는 살쾡이 눈을 가졌고, 자기 자신에게는 두더지 같은 눈을 가진 존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아픈 지적이겠지만 부인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 눈이 먼 사람이 많다. 남의 단점과 약점을 바라보기는 쉬워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바라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눈먼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남이 쓴 기사만 고치기를 20년, 어느 날 지면으로 한글맞춤법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떠밀리다시피 2008년 8월부터 게재한 '교열단상'이 벌써 200회를 맞았다. 그동안 어줍은 내 국어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아반성으로 글쓰기와 함께 공부하다 보니 4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 같다. 그동안 성원을 보내준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더 많은 격려를 부탁드리고 싶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