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산(動鶴山)으로 내린 바위 골짜기 유정(有情)도 하구나/ 대덕산(大德山) 오족봉(烏足峯)이 용호(龍虎)로 나뉘어 있구나/ 이 중에 풍경(風景)의 임자는 나뿐인가 하노라.'
대구의 옛 음악인인 가객(歌客) 낭옹(浪翁) 한유신(?~1765)이 대구를 배경으로 읊은 시조다. 대덕산은 앞산, 동학산은 경산 남쪽 4㎞쯤의 대구와 경계한 산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해 거의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구도호부 관청에서 미직(微職)으로 있으며 다른 시조에서 노래한 것처럼 '80이 거의 다 되어' 삶을 마칠 때까지 시조 짓고, 시조를 노래하는 가곡(歌曲)의 전승에 앞장섰다. 39세로 죽은 맏형의 영향도 있었다. 맏형은 궁중 연주 음악과 무용 업무를 맡던 장악원(掌樂院)의 관리였다.
그의 끼는 한양에서 '여항(閭巷) 6인'의 한 사람으로 이름 날리던 가객 김유기(?~1718)를 1715년 대구에서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본격화됐다. '여항 6인'은 국내 3대 가집(歌集)의 하나인 청구영언(靑丘永言)을 남긴 김천택을 비롯한 한양 최고 가객 6인을 말했다.
청구영언 등에 12수의 시조를 남긴 김유기는 자신의 노래책인 '영언선'(永言選)을 가질 정도로 뛰어났다. 시조 작가로 창작인이었다. 노래를 부른 명창이었고 제자를 키운 음악 전승인이었다. 낭옹은 바로 그런 스승이 1718년 운명할 때까지 배웠다. 낭옹 역시 비록 남아 전하는 시조는 11수뿐이지만 스승처럼 시조를 짓고 노래하고 전하려 했다.
지금 대구는 그를 잊었지만 그의 음악과 시조 맥은 이어졌다. 칠곡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창(唱)에 입문, 우륵의 가야금까지 배워 명창이 된 박귀희나 대구에서 활동하며 옛시조를 현대시조로 되살린 이호우의 덕분이다. 가야의 가야금과 가야 노래가 신라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고려 시조는 조선의 가곡이 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 한가운데 대구의 한 가객이 있었다. 대구는 그런 곳이다.
그제부터 '대구, 도나우가 흐른다'는 음악축제가 시작됐다. 2주간의 이 축제에선 도나우강이 통과하는 오스트리아(비엔나)의 다양한 고전음악을 소개, 연주하는 듯하다. 신천, 금호강, 낙동강이 흐르는 대구에서 이국적인 도나우강의 오스트리아 음악으로 여름을 보낼 모양이다. 기다리면 옛 가락을 전승해온 이곳에서도 '대구, 우리 가락이 흐른다' 같은 품격 있는 행사도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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